[그림에 투자하는 시간] 너에게 우리들의 마을 문을 열어주마




1950년대 한국 전쟁으로 혼란기를 겪던 시절, 당시 세계 미술계의 중심지인 파리에 한국인 여성작가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2018년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렸던 이성자 화백(1918-2009)이다.


이성자Nous Touvrons Nos Villagesoil on canvas55.5 *32.8cm1967서울옥션 27th HONG KONG SALE(2018.11) 낙찰가 HKD 480,000


작가는 경상남도 지방의 군수로 재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을 김해, 창녕, 진주 등에서 보냈다. 당시 이 화백 곁에 가까이 놓인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화가 활동과 더불어 그녀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성자는 1935년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짓센 여자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가정학을 공부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이 유학을 가거나 전업 미술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분위기상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에 소질이 있었음에도 여성으로서의 사회 통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졸업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성자는 남편을 만나 세 자녀를 두었으나, 혼란스러웠던 가정사로 인해 1951년 가족을 한국에 남겨둔 채 홀로 파리로 향했다. 이 과정은 누군가의 어머니, 부인도 아닌 인간 이성자로서 첫 발걸음이었고, 정식 미술교육을 받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미술로 향하는 본격적인 도전이었다.


작가는 파리 정착 초기에 의상 디자인 학교에 입학했지만 데생 실력을 눈여겨본 선생의 권유로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Acad?mie de la Grande Chaumi?re)에서 본격적으로 조형 예술을 공부했다.


이성자가 당시 파리 화단에서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1950년대 초반 두터운 마티에르가 돋보인 유화 작품을 선보이며 조형적 실험을 추구했다는 점, 둘째로 여성작가로서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여성작가의 삶과 한국적 소재들을 자신만의 추상으로 표현한 것과 마지막으로 평생 유화 1300여점, 판화 1만3000여점, 도자 500여점을 제작하고 생전에 개인전 80여회, 그룹전 300회 이상 등 열정적인 작업 활동을 꼽을 수 있다.


이성자의 작품은 1960-70년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토대로 ‘여성과 대지’를 주제로 작업했다. 이후‘도시’, ‘음과 양’ 등의 연작에서는 마치 동양의 상형문자처럼 작가가 창조한 추상 기호와 이미지가 등장한다. 도시의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표현한 방법은 기하학적 추상 회화로 나타나며 ‘동양과 서양, 자연과 기계’의 합일을 추구했다.


2018년도 11월 서울옥션 27회 홍콩세일 경매에서는 마을의 형상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너에게 우리들의 마을 문을 열어주마(Nous T'ouvrons Nos Villages)’ 1967년 작품이 시작가격의 2배가 넘는 금액에 낙찰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더불어 작가의 작품세계가 다시 한번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태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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