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호정 기자] 국내 ‘빅4’ 정유사들이 주유소를 거점으로 삼고 사업다각화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요동치는 국제유가에 번번이 발목이 잡히면서 정유사업으로는 수익성 제고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내연기관 차량의 감소를 내다보고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한국주유소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빅4’ 정유사 브랜드를 사용하고 주유소가 2010년 이후 매년 줄고 있다. 지난달 말(11월) 기준 영업 중인 주유소(직영 및 일반대리점)는 9640개로 2010년 대비 2745개나 감소했다.

매년 300개가 넘는 주유소가 문을 닫고 있는 것은 공급과잉에 따른 경쟁심화,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 확대 등으로 인한 경영난이 주요인이다. 아울러 요동치는 국제유가에 정유사들이 수익성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실제 ‘빅4’ 정유사가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주유소가 2009년 1558개에 달했지만 지난달에는 663개로 집계돼 7년 새 57.4%나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유사들도 앞다퉈 주유소를 신성장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합종연횡은 물론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가장 선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회사는 GS칼텍스다. 이 회사는 최근 롯데렌탈의 자회사인 카셰어링 그린카에 총 35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다. 주유소를 미래의 모빌리티 거점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다.

또한 커넥티드 카 솔루션 기업인 오윈과 자동차 O2O(Online to Offline) 업체 ‘카닥’의 지분도 각각 20억원(12%), 10억원(9%)어치씩 매입했다. 이외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와 함께 주유소를 물류 거점으로 삼은 C2C(Customer to Customer) 택배 집하 서비스 ‘홈픽’ 서비스 및 스마트 보관함 서비스 ‘큐부’도 런칭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주유소에 새로운 활용 가치를 부여하고 스타트업과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는 시도”라면서 “차량 접근이 용이한 주유소에 설치돼 차량 및 도보 이동 고객 모두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다르지 않다. 주유기, 세차장, 유휴부지 등 유형자산부터 경영관리역량, 마케팅 역량 등 무형자산까지 SK주유소가 가진 자산 전부를 공유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주유소 상상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2월 사업 모델을 공모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회사는 밀킷(Meal Kit, 간편 조리식) 배송·공급, 세탁물 접수·수령, 스마트 페이먼트 등 공간으로 SK주유소를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이 밖에 현대오일뱅크는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연료를 한 곳에서 해결 가능한 복합에너지스테이션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고, 에쓰오일은 KT와 손잡고 사물인터넷을 접목한 플랫폼 기반 미래형 주유소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유사업이 유가나 환율 등 외부 변수에 따른 변동성이 크고 영업이익률도 4% 안팎으로 낮은 편이다 보니 정유사들이 변신을 꾀하게 된 것”이라며 “주유소가 가진 물리적 입지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유입되는 소비자들로부터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