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법제화
가상실명계좌, FATF 금지 항목과 유사
④ 미국 FRB·FinCEN도 사용 금지...'입금코드' 금융실명제 적용 안돼
이 기사는 2019년 08월 20일 10시 05분 유료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회와 금융당국, 시장 참여자들이 곳곳에서 암호화폐 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구(FATF)가 암호화폐(가상자산) 취급업소도 자금세탁의무를 준수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하고, 글로벌 최대 이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발행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Wait And See' 입장을 고수하던 정부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국내 암호화폐 제도화는 '모 아니면 도'다. 신산업 육성의 초석이 되거나, 시장을 질식시키는 독약이 될 수 있다.



가상실명계좌(이하 가상계좌)가 자금세탁방지구(FATF) 금지 항목에 해당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법 시행 시 논란이 예상된다. 가상계좌는 암호화폐(가상자산) 취급업소(VASPs) 신고제의 핵심내용이자 최대 화두다.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개정안에 명시된 가상계좌가 오히려 자금세탁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에 심각한 오류가 감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상계좌가 범죄에 악용되기 쉽기 때문에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됐다는 점에서 재검토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 대리지불계좌·가상실명계좌, 계좌명의자 ≠ 계좌이용자


가상계좌는 FATF가 금지하고 있는 대리지불계좌(Payable Through Account)와 매우 유사하다. 대리지불계좌란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계좌를 이용해 입출금 등 은행 거래를 하는 것을 뜻한다. 일종의 '차명계좌'라고 이해하면 쉽다.


가상계좌도 계좌 명의자와 사용자가 다르다. 가상계좌를 일괄적으로 발급받는 기업 또는 기관은 계좌 명의자다. 이를 모(母)계좌라고 한다. 이를 통해 입출금 등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실질적인 계좌 이용자로 자(子)계좌에 해당한다. 가상계좌, 즉 자계좌를 이용하는 수많은 고객들은 전산코드로 식별되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고객들이 기업 또는 기관의 계좌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구조다. 사실상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계좌 거래를 하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자금세탁이나 테러자금에 이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애국자법(USA Patriot Act)에서 대리지불계좌를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해당 계좌를 실제로 사용하는 고객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나아가 범죄에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재정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별히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Federal Reserve Board of Governors)는 고객의 정보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대리지불계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금융범죄단속국(FinCEN)도 권고안을 통해 비슷한 형태인 중첩계좌(Nested Account) 사용을 금하고 있다. 이에 따라 FATF도 일찍부터 대리지급계좌 사용을 금지해왔다.


국내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는 “FATF와 미국은 타인의 명의에 뒤에 숨어서 계좌거래를 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며 “가상계좌는 오히려 자금세탁위험을 높이는 대리지불계좌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 가상실명계좌 실사용자 추적어려워...범죄수익 은닉·자금세탁 위험 높아


국내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의 내부 규정에 따르면 가상계좌를 사용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고위험으로 평가한다. 실제 계좌 이용자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범죄수익 은닉이나 자금세탁 용도로 쓰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자계좌의 경우 계좌 사용자가 계약자인지 확인하는 금융실명제 적용도 어려워 가상계좌 수십만 개를 유통해도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가상계좌의 정확한 명칭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서비스’다. 현재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사용하는 가상계좌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은행 계좌가 아니다.


가상계좌는 2001년 6월 은행이 입금자와 입금내역을 자동으로 매치·확인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다. 계좌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CMS(Cash Management System) 코드로 입금확인번호에 불과하다. CMS 코드는 기업이나 기관이 고객과 자금거래를 할 때 이용되며 업무 처리의 효율을 목적으로 한다. 무통장으로 정기구독료나 아파트 관리비, 각종 공과금을 입금할 때 즉시 입금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은 가상계좌 때문이다.


◆ 자금세탁방지 요건으로 가상실명계좌 규정 한국이 유일...“정부 고육지책” 시각도


현재 가상계좌를 가상자산 취급업소의 자금세탁방지 용도로 사용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문제는 현재 계류 중인 특금법이 모두 가상실명계좌 발급을 신고 요건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가상계좌 고객 명단을 암호화폐 거래소가 관리하는 이른바 벌집계좌(집금계좌)를 막고, 은행이 직접 고객계좌를 관리하도록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블록체인 전문가는 “(법제화 전까지는) 집금계좌보다 가상계좌가 자금세탁방지에 더욱 용이하다”며 “중소거래소도 가상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명확한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초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를 목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뒀던 집금계좌 사용 금지 사안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법원 결정이 나오면서, 별다른 검토 없이 가상계좌 사용 의무가 법률안으로 승격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암호화폐 취급업소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고사를 위한 목적의 가이드라인이 그대로 법률안에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개정안 발의 과정에서 업계 소통과 시장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법안소위 논의를 거쳐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시간을 두고 시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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