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아시아나항공이 안고 있는 대규모 리스부채가 대한항공에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채무가 인수 예정자인 대한항공의 실적·재무에 악재가 될 순 있지만 한편으로는 합병 심사국을 설득할 논리로도 쓰일 여지가 있는 까닭이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올 3월말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리스부채 총액은 4조8034억원이다. 항공사 리스는 영업활동에 필요한 항공기를 렌탈로 들여올 때 생기는 부채를 말한다.

아시아나항공은 해당 부채 탓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이익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리스관련 지출이 커서다. 올 1분기만 봐도 아시아나는 연결기준 166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영업외비용 항목인 리스부채의 이자지급 및 상환 등에 1773억원을 지출한 결과 54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이 회사가 리스부채에 골머리를 앓는 배경에는 신용도 저하가 꼽힌다. 항공기는 대당 렌탈비용이 수백억원을 호가한다. 그만큼 리스사는 각 항공사의 재무구조나 수익성을 꼼꼼히 볼 수밖에 없는데, 아시아나의 신용등급은 BBB-로 간신히 투기등급만 피한 상태다. 이와 함께 모회사 금호건설 또한 신용도가 BBB-에 그치는 등 신용을 보충 받을 우군도 없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아시나아가 최근 들여온 항공기 리스요율은 6%에서 최대 11.43%에 이른다.

리스 기간이 긴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아시아나의 리스부채 가운데 만기가 1년 이상 남은 중장기 부채규모는 4조1571억원(86.5%)에 달한다. 특히 항공기 리스 대부분은 계약 기간 내 요율 조정이 불가하다는 특징이 있는 만큼 이 부채는 통합 대한항공의 재무구조나 순이익에도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합병심사국으로부터 승인을 얻기 위해 다량의 공항 슬롯(이·착륙에 배분된 시간)을 포기하고 있어 리스부담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큰 편이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이 같은 부채가 대한항공에 악재로만 작용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나 인수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측면에선 과도한 채무가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단 이유에서다.

영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합병 심사국은 통합법인 출범에 따른 독과점을 크게 우려해 왔다. 통합 대한항공이 한국을 경유하는 항공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에 영국·중국은 양사가 보유한 슬롯 일부를 반납하게 하는 식의 조건부 승인을 내렸고 추후 EU나 미국 등도 이와 비슷한 요구를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장이 주목한 부분은 대한항공이 M&A 외에도 국내 유일의 대형항공사(FCS)가 될 옵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시아나가 재무불안 등의 요인으로 독자생존에 실패할 시엔 대한항공이 타의에 의해 독점 사업자 지위를 얻게 되는 까닭이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가 팬데믹 기간 화물운송에서 재미를 볼 때 독자생존이 가능하지 않겠냔 주장이 제기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이 2000%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병 승인 시 대한항공이 납입할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 대금 없이 재무건전성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인수 불발 이후 아시아나가 무너진다면 대한항공은 출혈 없이 한국시장에서 압도적 사업자로 거듭나게 된다"며 "이 경우 심사국들이 우려한 독과점 행태가 고스란히 나타날 수 있는 만큼 EU 등도 슬롯 일부 포기 등을 담은 조건부 합병 승인이 이득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지 않겠나"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