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진철 부국장]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허덕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낮 해가 너무 뜨겁고 덥다 보니 더위에 시달린 소가 밤에 허연 달만 봐도 놀란다는 말이다.

지난해 9월말 금융시장은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위기감이 고조됐다. 강원도는 춘천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담당했던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갚지 못하겠다며 기업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이는 지방 정부의 사실상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받아들여졌고, '레고랜드 사태'의 발단이었다.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금리는 오르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위한 채권 발행은 사실상 중단됐다. 

당시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상승 압박을 받던 시기여서 금리는 급등하고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후 다행히 금융당국의 긴급 위기 대응으로 시장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연말까지 '더위에 시달렸던 소처럼' 레고랜드라는 돌발 변수에 깜짝 놀란 분위기가 역력했다.

최근 금융당국 수장이 직접 나서 '9월 금융 위기설' 차단에 나섰다. 위기설의 근거는 코로나19 당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지원했던 대출 만기 연장·상환유예 조치가 9월에 끝나면서 자영업자의 빚 폭탄이 터진다는 소문이다. 금융시장 불안의 뇌관인 부동산PF 대출 리스크도 시한폭탄처럼 거론된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긴축 및 중국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추가 금리 상승 가능성도 나온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9월 금융 위기설'에 대해 한 목소리로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코로나19 대출의 만기 연장은 2025년 9월까지 조치 시한이 남아 있고, 부동산PF는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연초만 하더라도 정부는 우리 경제가 하반기로 갈수록 상반기보다는 경기 상황이 나아지는 '상저하고'를 전망했다. 하지만 하반기로 접어든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산업생산과 소비, 투자 등 각종 경기지표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상저하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수출의 주춧돌인 반도체가 하반기 들어 차츰 개선 흐름을 보이고 내수도 물가 둔화, 소비 회복, 중국인 단체관광 개시 등 긍정적인 요인이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수장이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9월 위기설'에 신경쓰는 것을 보면 그만큼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9월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해 기업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할 때 금융시장 경색을 불러온 '레고랜드 사태'로 확산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코로나 팬더믹 이후 언제 위기가 터질지 모른다며 조마조마했던 금융시장을 놀라게 만들어 경색시킨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부정확한 정보와 추측을 바탕으로 한 '위기설'은 경계하면서 리스크를 상시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 '더위에 시달리다 밤에 허연 달을 보고 놀란 소'처럼 막연한 불안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칫 '제2의 레고랜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1년 전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