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영 의장, 공무원에서 국내 최초 리츠 설립자로
[기로에 선 이지스] ① 투자 철학 확고…기관투자가 신뢰 얻어 코크랩 탄생





[편집자주] 이지스자산운용의 설립자인 故 김대영 이사회 의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리츠(REITs) 설립을 주도하는 등 국내 부동산 자산운용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다. 호방하고 허물없는 그의 성격 덕분에 주위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기관투자가들은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의장의 별세는 전설의 퇴장과 함께 이지스자산운용에 남겨진 이들에게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김 의장 사후에도 성장 가도를 이어갈 수 있을지, 경영진에 변화는 없을지, 2세를 대상으로 한 지분 증여는 원만하게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추진 중인 기업공개(IPO)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팍스넷뉴스 이상균 기자] 김대영 의장은 1937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친 포우 김홍량은 1907년 안악에 양산학교를 설립하고 최광옥, 백범 김구 등 교육 선각자와 애국지사들을 초빙해 교육 구국운동을 확산시켰다. 1907년 조직한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에도 김구 선생과 함께 가입해 활동했다. 1911년에는 안악 일대의 애국지사들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군자금을 모급하다가 체포되는 ‘안악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에는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코크랩 성과로 신탁사업 종자돈 마련





혼탁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김대영(사진)은 선친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아 경복고(30회)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어에 서툴러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미국 앰허스트대학 수학과를 졸업했으며 스탠포드대학에서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1961년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시작으로 1980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장, 경제기획국장을 거쳐 1986년 총리실 국무행정조정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제15대 건설부 차관으로 취임했으며 이후 대한주택공사 사장, 제9~10대 해외건설협회장을 맡았다.


30년 넘게 관과 공기업, 협회에서 일해 온 김대영은 2001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생애 처음으로 코람코자산신탁이라는 민간기업의 대표로 부임한 것이다. 고위 공무원에서 신생 회사로의 이동이 쉽지 않았겠지만 김 대표는 이를 훌륭히 수행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리츠 설립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개인과 기관의 자금을 모아 펀드를 만들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는 1960년 미국을 시작으로 호주·홍콩·일본·영국·싱가포르 등에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2001년 리츠, 2004년 부동산 펀드가 도입됐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실적은 미미했다. 국내 부동산 운용사들은 선진국과 비교해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사업규모도 영세했다.


김 대표는 코람코의 리츠 브랜드 ‘코크렙’ 시리즈를 출시하기 시작해 운용자산을 5조원으로 불렸다. 대표적인 투자대상으로는 한화 장교빌딩, 여의도 한화증권빌딩, YTN타워, 플래티넘타워, 대우조선해양빌딩, 종로구 G타워, 서현동 센트럴타워, STX남산타워, 평촌 G스퀘어, NH농협캐피탈빌딩 등이 있다. 코크렙은 현재까지 40개 이상이 설정되며 국내 부동산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초기 코크랩 1개의 운용자산은 1000억원대에 머물렀지만 가장 최근에 만든 43호는 7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내부기준수익률(IRR) 10%를 넘는 코크랩도 수두룩하다. 코크랩 1호(28.4%)와 2호(11.2%), 3호(31.1%), 4호(23%), 5호(28.9%), 7호(10.6%), 11호(14.4%), 14호(17.7%), 17호(17.8%) 등이다.


특히 2006~2007년은 코람코자산신탁 리츠사업부의 최고 전성기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2개 리츠를 설정 5년 만에 청산했는데 성과보수로만 6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며 “당시에는 매각 차익의 일정 비중을 성과보수로 챙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벌어들인 자금이 2006년부터 시작한 코람코자산신탁 차입형토지신탁 사업의 종자돈이 됐다”고 설명했다.


◆호방한 성격에 상대방 격의 없이 대해


코람코자산신탁이 짧은 시간 부동산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 대표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가 오랜 기간 관료사회에서 쌓은 인맥 덕분에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수월하게 자금을 출자 받을 수 있었다. 딜 소싱 과정에서도 인적 네트워크가 톡톡한 역할을 했다.


기관투자가들이 단순히 김 대표를 전관예우 차원에서 대접한 것도 아니다. 김 대표는 성격이 호방하고 직급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진심으로 격의 없이 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랫사람들을 위해 개인비용을 쓰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났다. 직원 보고를 들으면 단시간에 핵심을 짚고 군더더기 없이 후속업무를 지시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김 대표는 권위의식이 없는데다가 유머감각도 뛰어났다”며 “한번 만나본 사람들은 전부 김 대표의 매력에 매료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김 대표에게 암이 발병해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며 “침울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먼저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기관투자가들의 신뢰가 지속적으로 이어진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김 대표를 비롯한 과거 코람코자산신탁 경영진은 기관투자가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수익률 달성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면 펀드 설정을 하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이 일단 펀드부터 설정해서 운용수수료를 받아가는 데 급급한 반면, 김 대표는 자신만의 투자 철학이 확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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