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암호화폐 거래소는 뜻하지 않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바로 해킹이다. 미국 사이버보안회사 사이퍼트레이스(CipherTrace)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해킹에 따른 암호화폐 피해액이 9억 2700만달러(약 1조 585억원)이다. 지난해(2억 6600만달러) 대비 3.5배 정도 증가했다. 그 규모는 올해 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빗썸과 거래량 기준 국내 7위인 코인레일 등도 수백억원대의 암호화폐를 도난 당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암호화폐 거래소에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진 것이다.

◇암초 ‘해킹’ 확대에도 보상책은 ‘요원’

해킹 피해를 입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투자자 보상에 나섰다. 빗썸은 피해 금액 전체를 회사 보유분으로 충당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코인레일 경우 두 가지 대책을 내놨다. 코인레일이 도난 당한 암호화폐를 구매해 복구하는 것과 자체 발행한 레일(Rail)을 피해액만큼 교환해주겠다는 안이다.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피해를 최소화할 장치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방안은 미미하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보험의 경우 암호화폐 해킹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상품은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한화손해보험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해 암호화폐거래소를 위한 사이버보험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이뤄진 계약은 없다. 몇몇 암호화폐거래소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보험사와의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한화손해보험에서 개발한 상품을 개별 암호화폐거래소에 맞추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암호화폐거래소마다 자산규모, 성격, 보안 시스템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실제 계약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보험상품 활성화 ‘첩첩산중’

보험상품 출시라는 첫 발을 뗀 것은 투자자 보상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대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상품의 활성화와 상품의 다양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게 블록체인업계의 시각이다.

보수적인 관점의 배경은 까다로운 가입 요건과 보장 범위의 불확실성이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암호화폐거래소의 콜드월렛 기준, 보안 솔루션, 해킹 시도 수 등을 자체 심사 기준으로 정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짙은 암호화폐 성격 탓에 보험 가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의 심사 결과에 따라 보장 범위도 암호화폐거래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다른 근거는 재보험사의 참여 여부다. 재보험사는 보험사의 보험사 개념으로 보험사의 과다한 보험금 지급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암호화폐 해킹의 경우 보험사가 떠안을 피해보상액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선뜻 재보험 서비스를 제공할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암호화폐 해킹 보장 상품을 만들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 확실한 재보험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암호화폐 해킹 피해가 급격히 늘었고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재보험의 등장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재보험이 없이 보장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