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도체·화이트리스트' 폭탄…갈 길 바쁜 재계
위기 속 총수 오너십 부각…투자·감산·매입중단 등 발빠른 대응


[팍스넷뉴스 류세나 기자] 일본이 국내 경제계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를 볼모 삼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기는 이미 현실화했다. 여기에 한국에 대한 '화이트 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 방침까지 기정사실화되면서 각 기업들은 일본 거래처 점검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일본발 경제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전문경영인은 물론 그룹 총수들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 재계, 오너십 드라이브…'피해 최소화' 전방위 지원


1차 타격 대상이 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가격 하락에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재까지 맞닥뜨리면서 휘청이고 있다. 


재계에서도 소문난 현장형 리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먼저 나섰다. 이 부회장은 이달 초 엿새간 일본을 방문한 뒤 돌아와 전문경영인들에 전사적인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 가동을 주문했다. 또 직접 나선 일본 출장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의 긴급물량도 확보하는 데에도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귀국 직후 반도체·디스플레이(DS)부문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전(CE), IT·모바일(IM) 등에도 일본 제재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 또 각 부문별 협력사들에도 일본산 소재 및 부품 재고를 90일치 이상씩 확보하도록 하고, 확보한 물량의 소진과 대금 지급 등은 삼성전자 측에서 모두 책임지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이는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될 경우를 한발 앞서 대비한 조치로,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주문한 컨틴전시 플랜이 반영된 결과로 받아 들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위기 속 관련 1·2차 협력사에 역대 최대 금액인 323억3000만원을 상반기 인센티브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실적은 작년 말부터 매분기 반토막 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 파고를 넘기 위한 오너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는 SK하이닉스 역시 마찬가지다. 김동섭 대외협력총괄이 지난 16일 2박3일간의 일본 출장을 다녀온데 이어 같은 달 21일 이석희 사장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 협력업체 경영진들과 잇달아 만나 원자재 수급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에 대비한 방안을 모색했다. 


재계에서는 SK하이닉스 핵심 경영진의 잇단 일본 출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 회장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기업으로, 주변의 만류 속에 인수해 그룹 핵심 계열사로 키워냈다. 실제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전면에 나서지는 않으면서도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지적하는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포럼에서 "국내 중소기업이 불화수소(반도체 핵심소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품질의 문제다. 국내 제품은 디테일이 약하다"고 말했다. 이는 소재의 국산화로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이란 정부 대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우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장기화된 수요 감소에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까지 연이어 터지자 인위적으로 생샌량을 줄이는 극약처방을 택했다. 이 회사가 감산을 결정하기는 SK그룹 편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또 내년 하반기 준공 예정인 이천 M16 D램 공장의 장비 반입 시기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연기하기로 했다.


◆ '화이트리스트' 제외 확실시…위기 속 침착 대응



반대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올해만 이미 6000억원에 육박하는 누적 영업손실을 기록한 LG디스플레이에 3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승인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사를 치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또 국내 대기업 최초로 국산 불화수소를 빠르면 8월부터 생산라인에 투입하기로 전격적인 결정도 내렸다. 이미 이 회사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가 단행된 이후 줄곧 국산 대체를 위한 시험테스트를 진행해왔다.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일본의 반도체 재제 품목 중 제품 생산에 사용하고 있는 소재는 불화수소 단 1종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이미 중국산을 쓰고 있어 불화수소 대체에 성공할 경우, LG디스플레이는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당장의 타격은 없지만 LG전자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일본 현장 점검을 위해 직접 나섰다. LG전자는 최근 일본에 프리미엄 가전제품인 '시그니처' 라인업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판매에 나선 상황으로, 양국관계가 경색될 경우 한국제품 불매운동 등에 대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일본의 2차 경제압박 우려가 커지자 선제 대응에 나섰다. 최근 중국 출장을 마치고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주요 부품·소재 기업 경영진과 만나 공급망을 점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또한 이달 초 열흘간의 일본 출장 후 돌아와 사장단에 위기 대응을 강조했다. 실제 롯데마트는 26일부터 아사히, 기린이치방, 삿포로, 산토리 등 일본맥주 6종에 대한 신규 발주를 중단했다. 특히 롯데는 일본 아사히그룹홀딩스와의 합작사 롯데아사히주류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발주 중단에 따른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박용만 대상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제주에서 열린 상의포럼에서 "이번 일(일본의 경제 제재)은 재발 우려가 높은 사안"이라며 "지금은 기업들이 최선을 다해 대통령을 도와야할 때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에 기업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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