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제약은 지난달 26일 시설자금 조달 목적으로 280억원 규모의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전환가액은 8212원이며 전환권 행사시 발행 가능한 주식수는 340만9644주다. 

만기는 5년이며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이 각각 0%다. 투자자 입장에선 만기까지 CB를 보유하더라도 원금만 상환 받는 다소 불리한 조건이다.

채권자의 직접적인 투자실익은 전환권을 행사해야 얻을 수 있다. 경동제약은 꾸준히 주주친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매년 순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주주들에게 배당해 오고 있다. 올해 경동제약은 당기순이익보다 133% 많은 규모의 고배당을 시행한 바 있다. 2015년 이후 최근 4년간 평균배당성향(현금배당금/당기순이익)은 70.7%에 달한다. 알뜰살뜰 한 해 동안 살림해 번 돈의 3분의 2 이상을 주주몫으로 배당했다.  

올해 액면가 500원인 1주당 현금배당금은 300원이었다. 2017년과 2018년 현금배당수익률은 각각 3.7%와 3.6%에 달한다. 올초 현금배당수익률 역시 2.6%로 시중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횡보중인 주가가 빠지지만 않는다면 최소 은행 예금 금리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발행한 CB 채권 소유자가 배당을 목표한다면 일러야 내년 9월 이후에나 가능하다.

경동제약의 이번 CB발행이 주목받는 것은 이미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도 전환사채를 발행하게 된 숨은 배경 때문이다. 경동제약은 올해 6월말 기준으로 현금성자산이 700억원에 달한다. 투자부동산 자산 250억원과 관계기업투자자산 100억원, 자기주식 가치 220억원을 합하면 활용 가능한 자산가치는 약 1270억원에 이른다. 차입금도 30억원을 밑돌고 있어 저리의 은행대출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표면적인 CB발행 목적은 시설자금 조달이지만 전환권 행사로 오너2세 승계작업을 지원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오너 2세 류기성 경동제약 대표는 지난달 아버지 류덕희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증여 받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류덕희 회장 지분은 기존 10.1%에서 2.9%로 낮아진 반면, 류기성 대표 지분은 6.78%에서 13.94%로 상승했다.

보다 공고한 지배력를 위해서는 추가 지분 확보가 필요해 보인다. CB를 지분확대의 지렛대로 활용한 유사한 선례들이 있다. 

이번 CB에 매도청구권(콜옵션) 조항을 삽입, 류 대표가 추가적으로 지분을 늘릴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는 점도 눈에 띈다. CB는 액면총액의 최대 40%(112억원)까지 매도청구가 가능한데 권리를 (발행)회사가 지정하는 자에게 배정할 수 있다. 안정적인 승계작업을 위해 지분확대가 절실한 류 대표에게 옵션을 실행할 수 있도록 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최초 전환가액 기준으로 136만3857주 취득이 가능해 추가로 4.5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리픽싱 70%까지 조정될 경우 최대 6.2%(194만8164주)까지도 가능하다. 매도청구수익률(콜 수익률)은 연 복리 1%에 불과해 인수부담 역시 적다. 매도청구권 행사일은 발행일로부터 1년이 되는 날인 2020년 9월27일부터 2021년 9월27일까지 가능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CB발행으로 경동제약 류 대표 입장에서는 이자부담 없이 지분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2년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며 “인수자금이 마련 되는대로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