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결정적 순간
백색가전의 미래를 점치다
① 1968년 출범…1970년대초 자체 TV 대량생산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0일 11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출범 50돌을 맞았다. 1968년 일본산 수입 부품을 조립해 라디오와 TV를 만들던 회사는 반세기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품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난 50년간 최첨단 전자사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1등기업으로 달려온 삼성전자의 결정적 순간을 되짚어 봤다. 

[팍스넷뉴스 정혜인 기자] 삼성전자의 시작은 불투명했다. 전자사업을 유망업종으로 제시하는 내부리포트가 쏟아졌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을 자신하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투자금에 부담을 느낀 일부 경영진은 사업진출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한발 앞서 가전시장에 문을 두드린 경쟁사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이나 미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술력과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라면 지옥불에라도 뛰어들라고 각오를 다질 정도였다. 자체 사업능력을 키울 때까지 사업제휴도 망설이지 않았다.  


◆ 1960년대 말, 움튼 전자사업의 싹…삼성전자 설립


고(故) 이병철 삼성전자 선대회장은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로 사업을 시작해 제당사업, 모직, 비료사업, 금융업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전자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이다. 당시 그룹의 핵심인 삼성물산에 개발부를 만들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규사업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전자사업으로 모아졌다. 


이 시기 미국, 유럽에서는 민생용 전자기기는 물론 우주개발, 군사기술도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라디오, 진공관식 흑백TV의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정도'의 기술이 전부였다. 故 이병철 회장과 삼성물산 개발부는 기술 확보를 위해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병철 회장은 먼저 삼성그룹 내 전자사업의 기반이 될 회사 설립에 나섰다. 삼성그룹은 전자회사 설립을 위해 1968년 12월30일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7명의 발기인을 모으고 발기인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병철 회장의 5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결혼한 정상희 삼성전자 전 사장을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이듬해 초인 1969년 1월13일 서울민사법원에 삼성전자공업㈜(이하 삼성전자)의 설립 등기를 제출했다. 설립 직후 삼성전자의 직원수는 36명, 자본금은 3억3000만원이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부터 공장 입지 선정을 매우 고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 수원, 울주, 양산 등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오랜 조사와 검토 끝에 1968년 3월부터 10월까지 수원시 외곽인 매탄벌 148만m²(45만평), 경남 울주군 삼남면 가천 248만m²(75만평)의 대규모 부지를 매입했다. 투자 금액이 커지면서 사업 초기 자금도 활발히 조달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공장 부지 매입, 기술 인력 확보를 위해 5000만원씩 세 차례 증자해 설립 당시 3억3000만원이었던 자본금을 4억 8000만원으로 늘렸다. 


◆글로벌 파트너, '삼성산요전기, 삼성NEC'의 등장


이렇게 기반을 다진 삼성전자는 미래 먹거리 '백색가전' 사업에 도움을 줄 글로벌 파트너를 물색했다. 미국, 유럽, 일본의 전자업체들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 그러던 중 파트너 대상을 일본으로 한정했다. 일본 기업들이 1950년대 중반에 전자공업을 시작해 10년 만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웠고 사업 추진의 기본 방향이 전향적이라는 점이 이병철 회장의 구미를 당겼다.


삼성전자는 러브콜을 보내 온 일본 업체들 가운데 가장 마음이 맞는 일본 산요전기, 일본전기(NEC)와 합작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1969년 산요전기와 삼성산요전기(현 삼성전기)를, 1970년 NEC와 삼성NEC(옛 삼성전관) 법인을 설립했다. 삼성산요전기는 수출용 TV생산, 삼성NEC는 브라운관 제조 사업을 국내에서 이어나갔다. 특히 삼성산요전기는 1970년부터 라디오, 라디오 부품 생산에 돌입했으며, TV 생산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1970년 삼성산요전기는 첫 제품인 진공관식 12인치 흑백TV를 출시했다. 설립 초기 삼성산요전기의 TV 생산라인은 연간 생산량 15만대 수준이었다.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기 위해 삼성산요전기는 일본 산요전기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다양한 노력 끝에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1971년 1월29일 흑백TV 시생산 2개월 만에 중남미 파나마에 500대를 처음으로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산요전기 흑백TV 생산라인(자료=삼성전자 30년사)


◆1972년 첫 흑백TV 자체 대량생산


하지만 당시 삼성전자가 풀지 못 한 숙제가 있었다.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으로 전자사업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합작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에 팔지 못 한다는 조건에 앞길이 막혀 있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국내 판매 제품 생산에 매진했다. 먼저 위탁 생산 및 판매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삼성전자는 1969년 오리온 전자와 총판계약을 맺고 삼성의 상표를 붙인 TV 수상기 '프린스'를 시장에 발표했다. 1970년대 초 한일전기, 신한일전기의 스토브, 탁상형 선풍기, 냉장고 등을 시판했다.


삼성전자는 1971년 자체적으로 제조사업을 맡을 생산법인 '삼성일렉트릭스'를 설립했다. 판매업만 담당하다 처음으로 생산시설을 갖게 된 삼성전자는 TV, 계산기 등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제품들의 자체 생산을 서둘렀다. 일부 삼성산요전기의 국판이 허용된 1972년에는 삼성전자는 탁상용 전자계산기, 음향기기, TV, TV 부품 등의 기술 확보를 위해 일본에 기술 연수생 25명을 파견했다. 


생산 시설도 차근차근 갖춰 나갔다. 삼성전자는 가천 전탁공장을 착공하고 TV 신공장을 신설했으며,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국내 판매용 TV 공장을 인수했다. 수원 TV 공장 준공을 마무리한 시점에 흑백TV 생산시설을 설치하고 삼성물산의 흑백TV 생산시설도 옮겨왔다. 총 2개 라인에 연간 생산량 48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춰 양산에 돌입했다. 실험, 생산, 해외연수 등으로 쌓은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1972년 7월 20인치 흑백TV 대량 생산 시대를 열면서 가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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