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결정적 순간
'이병철 → 이건희' 경영 바통터치
② '실적 고속성장에 IPO까지' 사업 안착…1979년 이건희 부회장으로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0일 11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출범 50돌을 맞았다. 1968년 일본산 수입 부품을 조립해 라디오와 TV를 만들던 회사는 반세기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품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난 50년간 최첨단 전자사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1등기업으로 달려온 삼성전자의 결정적 순간을 되짚어 봤다. 
故 이병철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출처:삼성그룹)

[팍스넷뉴스 정혜인 기자] 가전업체 중심의 삼성전자를 세운 사람이 고(故) 이병철 삼성전자 선대회장이라면, 삼성전자에 '반도체 DNA'를 심은 주인공은 아들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1970년대 故 이병철 선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발 맞춰 삼성전자를 순이익 흑자 회사로 만든 후 기업공개까지 성공시켰다. 반도체 사업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이건희 회장은 1979년 삼성전자 이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한국반도체 인수...새 먹거리 사업 '안착'


삼성전기, 삼성전관이 고전하고 있던 1970년대 초,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향후 미래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TV 등 전자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반도체의 국산화'란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중앙일보 이사였던 이건희 회장은 이 같은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인수합병(M&A)시장에 나온 한국반도체에 눈독 들였다. 한국반도체는 1974년 1월 당시 미국으로부터 통신장비 등을 수입해오던 켐코(KEMCO)가 미국 현지법인과 함께 50만달러씩 투자해 설립한 기업이다. 하지만 출범하자마자 과다한 투자로 인해 경영이 악화돼 매물로 나왔다. 결국 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한국 측 투자지분 50%를 인수했다.


한 때 비서실의 반대 목소리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룹 직원들과 故 이병철 선대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은 세계 반도체 인사들을 만나고 공장을 방문하면서 직접 반도체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한국반도체 인수 후에는 반도체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의 노력에 故 이병철 선대회장을 선두로 그룹 전체가 반도체 사업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의 베팅은 통했다. 한국반도체는 풍부한 자본력을 만나 승승장구했다. 1976년에는 반도체 제품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1975년 33만달러였던 수출액이 1976년 385만달러를 기록하면서 10배 넘게 증가했다. 다음 해인 1977년에는 흑백TV, 오디오용 트랜지스터 10여종 개발에 성공했다. 그 결과 흑백TV 부품의 국산화율을 40~60%대에서 90% 이상으로 높였다.


동시에 가전사업이 안정을 찾으면서 삼성전자는 설립 후 최초로 흑자를 냈다. 독자 제품 생산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1973년까지 삼성전자는 3억2186만원의 순손실을 봤다. 곧바로 5억원을 증자해 자금 사정을 안정시켰고, 대금 회수조건 개선 등 각종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74년 처음으로 6억원의 흑자를 냈다. 


◆기업공개로 재도약…이건희 회장 경영 참여 본격화


1975년에는 기업공개(IPO)에 도전했다. 중앙일보 이사로 근무하던 이건희 회장이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전자 새 이사로 취임한 시점도 IPO 직전이다. 설립 당시 자본금이 3억3000만원이었던 삼성전자는 기업공개 직전 납입자본금 21억2665만원, 자본총계 42억원으로 늘렸다. IPO 기초체력을 탄탄히 다진 삼성전자는 1975년 6월30일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그 이후 실적은 고공행진 했다. 1974년 당기순이익은 6억1700만원에서 1976년 13억6100만원, 1979년 105억9000만원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급성장했던 1979년. 반도체 사업에서도 경영 능력을 증명해 보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의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삼성은 이 시점에 ▲질(퀄리티) 중심 경영 ▲통신사업 진출 ▲사업재편 등 이건희 회장 중심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이건희 회장의 질적 경영에 대한 집착은 그가 1993년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고 말하면서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퀄리티 중심 경영 방침이 삼성 내부에 뿌리내린 것은 이건희 회장이 이사로 근무했던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반도체 분야의 사업부 조정도 있었다. 1977년 이건희 회장은 한국반도체의 나머지 지분 50%를 인수하고 다음 해인 1978년 이름을 삼성반도체로 바꿨다. 대규모 투자로 삼성반도체의 실적이 악화되자,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수율을 개선하기 위해 1980년 삼성반도체를 삼성전자에 흡수합병 했다. 이후 한국전자통신(KTC) 인수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삼성은 반도체사업부문을 KTC에 매각해 재분리 과정을 밟았다. KTC는 정부가 통신산업을 민간이 주도하는 자율경쟁 체제로 바꾸면서 내놓은 통신업체로 1979년 삼성이 신규사업 진출의 일환으로 새롭게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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