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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사장의 가전집중, 매출 첫 1조 돌파로
유범종 기자
2019.11.21 09:35:23
③ 1984년 가전업계 1위 등극…신제품 개발·투자 결실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0일 14시 2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출범 50돌을 맞았다. 1968년 일본산 수입 부품을 조립해 라디오와 TV를 만들던 회사는 반세기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품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난 50년간 최첨단 전자사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1등기업으로 달려온 삼성전자의 결정적 순간을 되짚어 봤다. 


[딜사이트 유범종 기자] 1984년은 삼성전자에게 큰 변곡점으로 기억에 남을 해다. 국내 가전업계 만년 2위였던 삼성전자는 1984년 매출 1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하며 당시 업계 선두였던 금성사(현 LG전자)를 제치고 1위 자리를 꿰찼다. 이후 현재까지 삼성전자는 국내 가전업계 수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초중반 삼성전자를 진두지휘한 인물은 정재은 사장이다. 정 사장은 TV, VCR 등 주력 가전부문에서 기술혁신과 과감한 설비투자 등을 적극 추진하며 삼성전자 부흥의 초석을 다졌다.  


◆ 삼성전자 도약 이끈 정재은 사장


1982년 7월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전자공업 대표이사로 취임한 정재은 사장은 삼성전자를 국내 전자업계 정상으로 등극시키고, 세계시장 진출의 기틀을 다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정 사장과 삼성전자의 인연은 1969년 삼성전자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 아직 전자산업의 개념조차 불명확하던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받은 그는 새로 설립된 삼성전자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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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입사 당시 자재과장을 맡아 3년 만에 업무부 차장 승진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정 사장은 1972년 신세계백화점으로 옮겨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는다. 1977년 다시 삼성전자공업으로 돌아온 그는 기획담당이사로서 삼성전자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 사장은 1982년 삼성전자공업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선다.


정 사장은 미국 유학과 기업경험을 바탕으로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공격적인 투자와 선진기술 도입에 있다고 판단, 이 부분에 역점을 둔다. 이러한 그의 경영방식은 자연스럽게 제품 경쟁력 강화와 규모의 경제로 이어졌고 삼성전자 성장에 불을 붙였다. 실제 정 사장의 취임 전인 1981년 매출 3700억원 규모에 불과하던 삼성전자는 불과 3년 만인 1984년 매출 1조3516억원을 달성하며 당당한 국내 1위 전자기업으로 발돋음하게 된다.  


(자료=한국기업평가)

◆ 신제품 등에 엎고 기록적 생산


198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전자의 핵심사업은 가전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 발전과 맞물려 가전에 대한 다양한 소비자 요구가 쏟아지던 당시 삼성전자는 이에 부응하기 위한 신제품 개발에 적극 나섰다. 경쟁사와 차별화된 신제품의 잇단 출시는 곧 폭발적인 생산 확대와 매출 증대로 직결됐다. 


(자료=삼성전자 30년사)

삼성전자 가전부문에서 가장 큰 매출을 담당했던 것은 TV였다. 1970년대 후반까지 흑백TV로 승부하던 삼성전자는 1980년 컬러 방송이 시작된 이후 늘어나는 컬러TV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했고, 1983년 국내 최초로 음성다중 엑설런트TV를 개발해 생산에 나선다. 당시 엑설런트TV는 컬러TV의 대명사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영향으로 삼성전자의 컬러TV 생산량은 1982년 99만대에서 1984년 216만대로 두 배 이상 훌쩍 뛰며 매출 향상의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TV 이외에 다양한 가전제품에서도 적극적인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1984년 비디오 헤드 팁 가공생산에 착수해 우리나라를 세계 네 번째 VCR 헤드 생산국으로 올려놨다. VCR 헤드는 당시 초정밀 가공을 요하는 첨단기술제품이었다.


또 1984년에는 VCR의 슬림화 추세에 대응해 국내 최초로 초박형 96mm 슬림 타입의 VCR과 카메라 일체형 VCR을 개발했다. VCR 신제품이 잇달아 출시되면서 삼성전자의 1984년 VCR 생산량은 14만3000대로 불과 2년 사이에 다섯 배 이상 폭발적인 증가를 하게 된다.  


음향기기 제품의 생산 증대 또한 TV나 VCR 못지않았다. 삼성전자는 1983년 7월 더블데크를 최초로 채용한 카세트를 내놓았다. 이 카세트는 데크 2개에 녹음과 편집기능이 있어 더빙 녹음, 연속재생이 가능했다. 당시 혁신적인 기술이 적용된 카세트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생산량은 1982년 84만대에서 1984년 254만대로 대폭 증가했다.


당시 세탁기 관련 기술도 크게 향상되면서 삼성전자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인다. 1983년 최신 기능인 샤워 린스 방식을 채용한 세탁기를 출시한 데 이어, 1984년에는 크리스털 방식을 채용한 세탁기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삼성전자의 세탁기 생산량은 1982년 7만9000대에서 1984년 24만톤으로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 과감한 설비 투자 ‘국제 경쟁력 발판’


삼성전자는 잇단 신제품 출시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가전 생산설비에 대한 신증설도 활발하게 추진한다. 이는 생산 확대와 함께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발판이 됐다.


삼성전자는 VCR의 경우 기존 1개 양산 라인으로는 물량공급이 어려워지자 1983년 11월 VCR 신공장을 신축했다. 이 공장은 3개 양산 라인과 월 1만5000대의 생산능력을 지녔다. 3개 라인 중 1개 라인은 기존 라인을 이설한 것이며 2개 라인은 자동화 라인이었다. 삼성전자는 VCR 공장 신축을 통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양산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 사업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 공장을 지속적인 증설하며 1984년에는 연간 생산능력이 240만대에 달했다. 이는 일본 산요전기의 180만대, 마쓰시타전기의 160만대, 미국 리튼의 100만대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1983년 수원단지에 부지를 마련해 연산 100만대 생산능력을 지닌 마그네트론 공장을 완공했다. 전자레인지 핵심부품인 마그네트론은 당시 미국과 일본 만이 생산이 가능했으나 삼성전자의 설비 투자로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 전자레인지용 마그네트론 생산국이 됐다.


삼성전자는 가전사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삼성전자는 전세계 초일류기업이 됐다. 1980년대 가전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제품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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