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기로 놓인 암호화폐 특금법 ‘가상실명계좌’
개정안 폐지보다는 미봉책 통과라도...사문화 가능성 커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0일 09시 2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조아라 기자] 암호화폐 거래소의 ‘가상실명계좌(실명확인입출금 서비스)’ 존폐 이슈가 본격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달 24일에 이어 오는 21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가상실명계좌를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날선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가상실명계좌는 암호화폐 취급업소 신고제의 주요 요건 중 하나다. 통과가 가장 유력시되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특정금융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은 가상실명계좌가 없으면 국내에서 암호화폐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도록 했다. 특금법은 암호화폐 관련기업도 자금세탁방지의무를 준수하라는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안을 담았다. 우리나라는 내년 6월까지 이 같은 내용의 특금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가상실명계좌가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금지하고 있는 대리지불계좌(Payable Through Account)에 해당할 수 있는 점 ▲우리나라만 가상실명계좌를 요건으로 규정한 점 ▲원화 입출금을 다루지 않는 경우도 가상실명계좌를 일괄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점 ▲가상실명계좌 발급 예외의 경우를 법률로 정하지 않고 금융당국 재량에 맡긴 점 ▲가상실명계좌 발급 권한을 별다른 요건 없이 은행에 부여해 근거 없이 발급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점 등의 문제를 지닌다고 지적해왔다.


현재 가상실명계좌를 발급받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네 곳 뿐이다. 이대로 특금법이 통과하면 이들을 제외한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는 신규 고객 유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가상실명계좌가 암호화폐 시장을 죽이기 위한 도구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4일 국회 법안소위에 출석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에도 이 같은 정부 의도가 엿보인다. 손 부위원장은 가상실명계좌의 성과가 ‘김치프리미엄’으로 불리는 투기 열풍을 잠재우는 효과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김치프리미엄 가상자산에 대한 투기열풍이 있었을 때 열풍을 잠재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실명으로 확인하고 거래하라는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시장을 죽이는 것이 모범사례냐”고 반문하면서 가상실명계좌의 자금세탁방지 효과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신고제 수리 요건을 심층 검토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가상실명계좌가 법안에 편입된 결정적 배경은 암호화폐 투기 광풍이 일던 지난 2018년 1월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에 있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의 이른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발언’ 연장선상으로 마련된 당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은 자금세탁방지보다는 ‘투심 잡기’에 방점이 찍혔다. 정부는 은행을 통해 계좌 발급을 막아 암호화폐 시장에 신규 자금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도록 했다. 2017년 9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상통화 현황 및 대응방향’에서 단기실행 방안으로 등장한 가상실명계좌가 이를 계기로 별다른 검토나 시장 조사 없이 그대로 법안으로 반영된 것이다.


시장과 야당은 가상실명계좌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지만 업계의 적극적 대안 대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나온다. 실제 지난 9월 핀테크산업협회에서 열린 특금법 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은 가상실명계좌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장 관계자들에게 대안 제시를 부탁했지만 시장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국내외 사례 조사와 연구, 적극적인 대안 제시가 선행돼야 하지만 대부분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은 이 같은 움직임에 매우 소극적인 상황이다. 또 이해관계가 달라 통일된 의견 제시가 어려운 것도 장애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현재로서는 가상실명계좌 대상 직종을 법률에 열거하고, 업계가 수용할 수 있는 명확한 발급 요건을 시행령에 명시하는 절충안이 가장 유력하다. 이 경우 가상실명계좌 법률 문구는 사문화 형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여야 모두 특금법 통과 필요성과 시급성, 내년 FATF 총회 결과와 경제 제재 위험성을 인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제 와서 법안을 크게 손보기 어렵다는 데에도 공감대를 형성한 분위기다. 


하지만 야당이 ‘진흥 후 규제’ 입장을 고수한다면 법안 통과가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 만약 내년도 총선 모드로 국회에서도 특금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FATF 유예기간을 넘기게 된다. 정부여당과 야당, 시장 모두 이 같은 사태는 피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차라리 미봉책의 특금법을 통과시킨 후 시행령에 세부안을 넣자라는 데 논의가 모아지는 상황으로, 오는 법안소위에서 특금법의 향방이 정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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