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결정적 순간
품질 앞세운 '신경영' 시대 개막
⑤ 이건희 '프랑크푸르트 선언' 1년 만에 매출 10조 돌파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1일 09시 4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출범 50돌을 맞았다. 1968년 일본산 수입 부품을 조립해 라디오와 TV를 만들던 회사는 반세기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품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난 50년간 최첨단 전자사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1등기업으로 달려온 삼성전자의 결정적 순간을 되짚어 봤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팍스넷뉴스 류세나 기자] 1993년은 삼성에 있어 대전환의 해였다. 이건희 회장은 그 해 3월 제2 창업 5주년을 맞아 '제2 창업 제2기'를 선언하고, 새로운 경영이념을 선포했다. 핵심은 '품질 혁신'이었다. 


◆ 라인스톱제·임원 현장근무제 등 도입…불량률 절반 낮춰 


당시 이 회장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삼성의 장래에 위기감을 느꼈다. 외형적인 성장은 거듭하고 있었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21세기를 앞두고 치열한 생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2류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 대대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그의 유명한 어록도 그 때 나왔다. 


'신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라인스톱제를 도입했다. 라인스톱제란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라인 가동을 멈추고 문제점을 해결한 후 재가동함으로써 불량률을 낮추는 조치다. 이 같은 변화를 통해 그해 전자제품 품목별 불량률이 전년보다 30~50%p 가량씩 줄어들었다. 


또 매출이나 이익률 등 성장 중심으로 평가내리던 것에서 품질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사업별로 '업의 개념'에 맞는 품질 중심 전략을 짜고, 여기에 그룹 기여도 등을 적용해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성과중심의 경영관습에서 비롯된 조직 재부의 이기주의, 도덕불감증을 뜯어고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외에도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출근하는 '7·4제'도 시행됐다. 이는 단순한 출퇴근 시간 변경이 아닌 주어진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를 담은 조치였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이에 더해 임원들에게는 주 4일을 사업장(공장)이나 매장, 협력회사, 거래선, A/S센터 등 현장에서 지내게 했다. 현장근무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빠르게 해결하도록 유도한 조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듬해부터 본격 추진된 경영혁신 활동의 토대가 됐다. 1994년 삼성전자는 자원관리시스템(ERP) 등 마스터플랜 수립하고 이를 단위 사업장별로, 또 전사로 확장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기업혁신 작업을 고도화해 나갔다. 


◆ 1년 만에 실적 급성장…부채비율도 절반으로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특강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수치적으로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다음해인 1994년 삼성전자는 사상 첫 연매출 10조원(개별기준) 달성 신화를 썼다. 매출은 전년보다 41.2% 늘은 11조5181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2조6075억원)은 무려 99.2% 확대됐다. 순이익은 1546억원에서 9450억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이 회장의 '신경영' 방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이 때 처음으로 4조대를 찍었고, 재무 유동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운전자본도 2조원을 돌파했다. 수년간 300~400%대를 넘어서던 부채비율도 이 때를 기점으로 점진적으로 줄기 시작했다. 1994년 부채비율은 217.4%다.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1994년 삼성전자의 NCF는 약 3조954억원이다. 순이익 대비 두 배 가량 많은 현금이 유입된 셈이다. 다만 자본적지출(2조9475억원) 또한 크게 늘면서 오히려 잉여현금흐름(FCF)는 전년보다 75.4% 줄어든 1479억원을 내는데 그친 것으로 확인된다. 


실제 삼성전자는 94년 큰 폭의 투자를 단행했다. 


그해 5월 국내 기업 최초로 일본 상장기업인 럭스의 지분 51%를 20억엔에 인수했다. 럭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오디오 설계기술을 가진 기업으로, 삼성은 럭스 인수를 계기로 단번에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또 같은 해 칠레 통신운영사업을 독점하던 스페인의 텔레포니카로부터 엔텔의 지분 15.1%(1억 5000만 달러)를 사들였다. 


이 외에도 가전 및 통신제품의 EU 서비스 강화를 위해 프랑스 DMS도 인수했다. DMS는 프랑스 전역에 174개의 서비스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기업으로, 이를 기반으로 삼성은 프랑스 지역 마케팅 작업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하는 데에도 성공, 여기에 들어간 개발비도 막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8인치 웨이퍼를 착장한 기흥 캠퍼스 6, 7라인 준공도 이 때 완료됐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6M D램 양산시점을 앞당기는 한편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재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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