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떠난 엘리엇
짧고 굵었던 20개월
① 지배구조개편 추진 직후 등장…정의선, 두 달 만에 백기
이 기사는 2020년 01월 23일 15시 0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에 걸림돌로 작용하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지난 2018년 4월 10억달러(한화 약 1조1700억원)를 쏟아 현대차그룹의 주요 3개 계열사 지분을 매입, 경영참여를 선언한지 20개월 만의 철수다.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이 야심차게 준비한 지배구조개편안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팍스넷뉴스는 엘리엇의 등장과 철수과정을 짚어봤다.  


[팍스넷뉴스 권준상 기자] 엘리엇이 지난해 말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현대차 지분 약 2.9%, 현대모비스 2.6%, 기아차 2.1% 등이다. 현대차그룹이 야심차게 준비한 지배구조개편안을 두 달만에 철회하게 만든 세력의 퇴장이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4월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지분(총 10억달러 규모) 보유를 선언하며 등장했다. 당시 지분율이 5%를 넘지 않아 공시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지분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 시기 이들 3개사의 시가총액(현대차 34조8000억원·기아차 13조2000억원·현대모비스 25조5000억원)이 73조5000억원에 달했던 것을 고려할 때 3사 지분율은 1.5%를 밑돈 것으로 파악됐다. 


엘리엇의 등장은 민감한 시기 탓에 주목받았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순환출자고리를 끊을 수 있는 지배구조개편안을 내놓은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개편안은 현대모비스를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으로 분할한 뒤 사업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시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후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과 계열사 간 지분 거래 등을 거쳐 그룹의 지배구조를 최대주주(정몽구, 정의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등으로 단순화하고, 기존 4개의 순환출자를 끊는다는 구상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모비스-현대차',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구조에 놓여 있었다. 


당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안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경영승계라는 중차대한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껄끄러운 상대를 만난 상황이었다. 엘리엇은 앞서 2015년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삼성을 괴롭힌 전례가 있었다. 더욱이 이들은 지배구조재편 시기는 물론 기업의 실적이 악화됐을 때 들어와 고배당과 주요 안건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로 유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사업실적이 급격히 쇠퇴하던 시기였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에 대해 "고무적이지만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세부적인 로드맵을 공유하라"고 요구했다. 엘리엇의 공세는 점점 거세졌다.  2018년 4월말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을 통한 지주사 전환 ▲자사주 소각 ▲배당률 40~50%로 상향 조정 ▲다국적 회사 경험이 풍부한 사외이사(3명) 추가 등을 요구했다. 지배구조개편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공식화한 가운데 고배당에 대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며칠 뒤 현대차는 1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개선 노력에도 지배구조개편안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을 통해 지주사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엘리엇의 주장대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현대차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 금융사를 자회사로 둬 금산분리 원칙을 위반하게 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금산분리법에 따라 비금융 지주사가 금융계열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모듈·AS사업부문을 분할한 뒤 총수일가(정의선 23.29%, 정몽구 6.71%)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은 현대모비스 주주권익에 부정적이라는우려를 제기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엘리엇의 전략은 먹혀들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 글래스루이스 등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이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던 지배구조개편안에 반대권고를 내놓기 시작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5월말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개편안을 보완·개선해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엇의 공격에 무릎을 꿇은 현대차그룹은 이듬해인 2019년 주주총회에 맞딱드렸다. 엘리엇은 8조3000억원에 달하는 고배당과 자신들이 선정한 인물의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시장 관계자들이 현대차그룹의 편에 섰다. 엘리엇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논리였다. 3사의 주총에서 배당과 사외이사 선임안건은 모두 현대차그룹이 주장한대로 통과됐다. 


실제로 당시 국내 의결권자문기관인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엘리엇이 현대차에 제안한 배당률과 배당성향은 각각 8.97%, 404.18%로 전년 대비 7.41%p, 377.41%p 증가한 수치”라며 “업종 평균 배당률과 배당성향이 각각 0.87%, 26.45%인 점을 고려할 때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엘리엇 측은 주총 이후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엘리엇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 달라”고 밝히며 고군분투할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채 일년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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