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양도웅 기자] 차기 우리은행장 선임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가장 유력시되던 김정기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이 아닌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가 내정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행장 선임 과정에서 권 대표와 김 부사장 사이에 '묘한 경쟁 관계'가 구축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차기 행장에 추천된 권 대표가 일단 한발 앞선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 조직개편에서 김 부사장이 행장만큼의 실권을 거머쥐었다는 평가 때문이다.
또한 두 인물 모두 1960년대 초반생이자 상업은행 출신으로, 1950년대 후반생이자 한일은행 출신인 손태승 회장의 뒤를 잇기 적합해 훗날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 차기 우리은행장, 김정기 아닌 권광석.. 왜
우리금융지주는 11일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그룹 임추위)를 열고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로 권광석 대표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우리은행 이사회를 거쳐 3월 말로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권 대표 내정에 일단 '놀랍다'는 반응과 권 대표가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는 평이 우세했다. 그룹 임추위 위원장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장 선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다른 후보인 김정기 부사장을 밀고 있다는 전언이 일찌감치 흘러나와, 차기 행장을 김 부사장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곧바로 권 대표가 추천된 이유에 대한 여러 해석이 오가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그룹 임추위가 권 대표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에 높은 점수를 줬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 부사장이 주로 경영전략과 지원 쪽에서 경험을 쌓은 데 반해, 권 대표는 홍보와 대외 업무에서도 능력을 키워 왔다. 실제 권 대표는 금융당국과 정치권, 언론과의 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우리은행에서만 경력을 쌓은 김 부사장과 달리, 권 대표가 2018년 3월부터 약 2년간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로 재직하며 '외부자의 시선'으로 우리금융그룹을 바라봤다는 점도 그룹 임추위의 선택을 받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고객 비밀번호 무단 도용 사건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우리은행에 권 대표의 장점인 '마당발'과 '객관적 시각'이 은행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 은행 임원 인사서 목소리 못 낸 차기 행장...그룹 내 2인자는 누구
일각에서는 차기 행장 선임 과정에서 구축된 권 대표와 김 부사장 간의 '경쟁 관계'가 차기 행장 추천 발표 이후 곧바로 전해진 지주 및 은행 임원 인사로 더 공고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조직개편에서 드러난 두 가지 점 때문이다.
먼저 김정기 우리은행 부행장(그룹 임추위 당시 직책)이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김 부사장이 승진 이동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김 부사장이 맡은 조직이 이번에 신설된 '사업관리 부문'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는 김 부사장이 책임자인 사업관리 부문에 대해 "그룹 주력 사업인 은행·카드·종금·자산운용의 시너지 창출과 협업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업관리 부문을 신설했다"며 "(이 조직을 통해) 자산관리·글로벌·기업금융 등 그룹의 주요 시너지 사업을 강화하고 지속 성장을 위한 기반을 공고히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 회장과 함께 합을 맞추는 그룹의 '2인자'가 은행장인지 사업관리 부문장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설명이다. 우리금융지주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르면 지주 임원 선임은 전적으로 회장 권한이다. 손 회장이 자신의 복심인 김 부사장과 계속 호흡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우리금융지주도 다른 금융지주와 마찬가지로 차기 회장 선임에 현 회장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다.
또한 이번에 발표된 은행 임원 인사 선출 과정에서 차기 행장인 권 대표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2년간 친정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조직 장악이 당장 필요한 권 대표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에 권 대표가 사실상 그룹 2인자이자 차기 회장 자리인 은행장 위치에서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 부호가 붙는다.
◆ 출신성분까지 비슷한 권광석, 김정기...차기 회장 자리 놓고도 격돌?
권 대표와 김 부사장 모두 1960년대 초반생, 상업은행 출신이라는 점도 두 인물의 경쟁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 힘을 싣게 하는 요소다. 1959년생, 한일은행 출신인 손 회장의 뒤를 잇기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둘 사이의 경쟁 의식이 당장 우려스러울 정도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리금융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한 지 만 1년밖에 되지 않아 증권·보험 등 비은행계열 부문 확대에 집중해야 하고, DLF 보상 문제와 비밀번호 도용 사태 수습 등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이 산적한 까닭이다.
물론 손 회장의 연임 여부가 변수다. 손 회장은 현재 DLF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연임이 불가능한 중징계를 받았으나 행정 소송으로 이를 뒤집겠다는 방침이다. 이 선택의 결과에 따라 차기 회장 선출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예정대로 3년(최대) 뒤가 될 수도 있다. 차기 회장 선출 절차가 예상보다 일찍 시작될 경우 권 대표와 김 부사장 간의 경쟁이 다시 시작될 여지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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