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혜인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자동차 배터리 전쟁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에 유리한 예비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은 하반기부터 미국 내에서 관련 사업을 사실상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0월 전까지 LG화학과의 원만한 협상테이블을 조성해야 할 수세적 상황이 됐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는 지난 14일(현지시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날 판결은 예비결정으로 최종 판결은 오는 10월 5일 내려진다.

일반적으로 ITC의 예비결정과 최종결정의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수십년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두 결과가 달랐던 적은 전무했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도 예비결정과 최종결정은 대부분 동일하게 결론내려졌다. 

오는 10월 ITC가 최종적으로 LG화학의 손을 들어준다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에서 정상적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구체적 결정문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ITC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다면 해당 기술을 접목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모듈·팩 관련 부품 및 소재의 미국 내 수입은 금지될 전망이다. 게다가 관련 기술을 사용한 미국 조지아 공장 생산 물량까지도 영향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투자하겠다고 알려진 금액은 3조원이다. 1조9000억원을 들여 1공장을 짓고 있으며, 늘어나는 수주 물량에 힘입어 2공장(1조1000억원 수준 투자 예정)도 설립 계획이다. 여기서 생산한 배터리는 독일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될 예정이다. 

미국 땅에서 펼치려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0월 최종 판결 이전에 어떻게든 LG화학과의 원만한 협상을 마무리지어야만 한다. 

그 동안 두 회사가 협상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는 지난해 9월 한 차례 물밑 접촉을 했다. LG화학이 내건 협상 조건에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수용하기 만만찮은 부분이 포함돼 있어 한 차례 결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예비결정으로 협상테이블에서의 SK이노베이션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LG화학이 지난해보다 더 까탈스런 협상 조건을 내걸어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이 미국 내 매출의 일부를 LG화학에 로열티로 지급하거나, LG화학의 특허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가 원만한 합의를 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협상이 결렬된다 하더라도 솟아날 구멍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기관인 무역대표부(USTR)의 'ITC 결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카드가 남아 있다.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수요 대비 공급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칫 SK이노베이션의 공급이 막힌다면 당장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피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3조원대 대미 투자도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동안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결정을 수차례 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USTR로 하여금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가 이번 배터리 소송전에서 SK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서명문을 앞서 ITC에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