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남매의 난
KCGI의 쇼는 계속돼야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02월 20일 15시 3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권일운 기자] KCGI는 대한항공의 재무적 투자자다.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주식을 매입했고, 이들 주식을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것이 존재 목적이다. 한진그룹의 경영상태와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대내외 천명하며 전략적 투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한진칼 주식을 비싸게 파는 게 본업인 재무적 투자자다.


주가가 오르는 이유에 대해서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 대한항공의 실적이 개선돼도 그만, 재무구조가 좋아져도 그만이다. 중간중간 배당도 받으면 금상첨화다. 조양호 회장의 타계는 KCGI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쁜 소식(?)이었다. 한진칼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을 벼랑끝까지 몰고간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 소식도 호재였다. 역시나 한진칼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재무적 투자자들의 패턴은 정형화돼 있다. 기존 오너 또는 경영진에게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배당을 늘려달라던지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라는 요구도 한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에게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자연스레 주가는 오른다. 그리고 나서는 주식을 팔아 치운다.


행동주의 펀드의 손을 탄 기업의 체질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실력 행사가 기업의 근본적 혁신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행동주의 펀드를  거치는 과정에서 '탈탈 털린' 기업들의 사례가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KCGI라고 크게 다를까 싶다. 엄밀히 말하면 한진그룹을 어떻게 탈바꿈시킬까보다는 한진칼 주가를 어떻게 끌어올릴지를 신경써야 하는 곳이다. 한진칼 주식을 팔고 난 뒤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KCGI 펀드 출자자가 투자 대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연기금 같은 곳이 아니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KGCI는 자신들의 펀드 만기가 10년도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대부분 그렇다. 출자자들이 1~2년 내에 끝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출자자들의 관심사는 한진그룹의 경영상태를 어떻게 개선할 지에 쏠려 있지 않다. 한진칼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심지어 상당 부분의 투자 재원을 주식담보대출로 마련했기 때문에 자칫 주가가 떨어지면 오히려 큰일이 난다.


KCGI는 한진그룹의 경영 상태를 개선해서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 주장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조원태 회장과 그의 가신들만 쫓아낸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항공산업 경영은 고난이도의 사업이다. 정치적 판단도 필요하다. 인허가 권한을 가진 우리 정부와 취항 상대국 정부, 항공기 제조사, 항공동맹체, 제휴 항공사 등과 수시로 소통해야 한다.


항공산업 생태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 고 조양호 전 회장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조원태 회장은 그 생태계 구성원들로부터 조양호 전 회장의 후계자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미국 델타항공이 (대놓고는 아니라도)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조 회장의 가신으로 분류되는 현 경영진들만큼 노선망 구축 영업, 안전 분야에 능통한 이를 영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이번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승리하는 것이 과연 KCGI에게 바람직한 시나리오일까. 바람직한 시나리오라 함은 딴 게 아니다. 한진칼 주가 상승이다.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진칼처럼 시가총액이 큰 종목들의 주가는 어지간한 이벤트가 아니고서야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KCGI의 깜짝 출현이나 조양호 전 회장 타계, 조현아 전 부사장의 KCGI-반도건설 연합 참여 선언 정도는 돼야 한다. 하지만 KCGI의 승리는 추가적 이벤트 등장을 가로막아서는 평화 시대(?)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이후 주가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실적 개선도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 항공산업 생태계가 카르텔처럼 움직이고 있어서다. 진에어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정부 제재로 인해 잠깐 주춤하지만, 한진그룹이 멍석을 깔아준 판에서 다른 저가항공사(LCC)들보다 상대적으로  시장에 손쉽게 안착했다. 그런 항공시장에 이방인들이 등장해 바람 좀 일으킨다고 효과가 얼마나 날 지 미지수다.


KCGI가 조원태 회장이 자신들 것을 '베꼈다'고 주장한 재무구조 개선 효과는 기대가 된다. 비핵심 자산 매각은 KCGI만의 독창적 아이디어는 아니다. 한진그룹을 관심 있게 지켜본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나 심지어 단순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 미디어조차 "호텔, 리조트 팔아서 빚 갚아야 한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KCGI의 공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은 있지만, 조원태 회장도 비핵심 자산 매각에 나서기로 했다. KCGI가 이기던 말던 이뤄질 일이라는 얘기다.


KCGI도 이 정도 수준의 계산은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당장 백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여론을 얻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이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는 판단했다고 본다. KCGI가 지금 당장 이긴다고 해서 한진칼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몇천억원 어치 상장 주식을 단기간에 팔아치울 수도 없다. 


그러고 보면 현 시점에서 KCGI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가까스로 패배'다. 대신 올 연말 무렵 조원태 회장 측에게 다시 싸움을 걸면 된다. 그러면 주가는 또 오른다. 그리고 또 아쉽게 패배한다. 펀드 만기까지 반복하면 수천억원 어치, 그 무렵이면 조 단위가 될지도 모르는 물량을 팔아 치워도 수익이 날 만큼 주가가 올라 있을 것이다. 단, 참패는 곤란하다. 그러면 소액주주들의 기대감을 저버리게 된다.


지금 KCGI가 되뇌이는 슬로건은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가 아닐까 싶다. 쇼가 승리로 끝나면 오히려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 호기롭게 수립한 경영 개선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다. 10년 짜리 쇼를 상영하고, 그동안 한진칼 주가가 쭉쭉 오르는 편이 KCGI가 기대하는 가장 이상적 시나리오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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