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 부장] 한국은행이 은행, 증권, 보험사가 보유한 회사채를 담보로 10조원 규모의 대출을 시행키로 했으나, 정작 가장 자금이 필요한 증권사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금융이 이미 ‘AA' 등급 이상의 회사채를 담보로 대출을 시행하고 있는데다, 이미 한 차례 유동성 고비를 넘긴 증권사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회사채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기업어음(CP) 만기를 대응해야 하는 증권사는 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이 더 필요한 상황인 셈이다.

한은은 전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국내 16개 은행, 16개 증권사, 6개 보험사에 민간기업이 발행한 ‘AA-' 이상 회사채를 담보로 최장 6개월간 대출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대출금리는 182일 만기 통안채 금리에 0.85%P 가산한 수준이다.

그러나 중대형 증권사 중심으로 지난달 한 차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보유채 매각이나 담보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한은의 자금을 수혈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증권사는 그동안 주요국가의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을 대규모 발행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으로 지난달 주가지수가 폭락하자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 압박에 시달렸다. 증권사가 마진콜에 응하지 않으면 거래 상대방은 반대매매에 나서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초자산 하락에 따른 손실을 증권사가 떠안아야 한다. 지난달 말 증권사들의 ELS 발행잔액은 50조원을 돌파했고, 일부 중대형 증권사는 각각 1조원 규모의 마진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사는 보유한 국공채, 회사채, 여전채 등을 시장에 던지면서도 CP를 찍어내며 현금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채권 매물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면서 CP 금리도 덩달아 상승해 증권사 부담은 가중됐다. 조달한 자금은 달러로 바꿔 마진콜에 응했고 이는 원달러환율의 급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더구나 PF-ABCP의 차환 발행도 쉽지 않게 되자 증권사들은 증금에 몰려가 회사채 담보대출을 받는 등 유동성 마련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회사채 담보 대출은 증권사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채권시장안정펀드의 ABCP 매입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금융당국은 또 다시 금융시장 충격이 올 경우 마지막 카드로 활용할 태세다. 수익성만 쫓아 PF-ABCP에 손을 댄 증권사에 대한 당국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국 정부의 양적 완화로 주가지수가 등락세로 접어들었고 증권사는 다시 ELS 발행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는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ABCP 등의 만기가 꾸준히 도래하는데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일부 증권사의 경우 다시 주가 폭락장세가 온다면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며 “한은 자금을 수혈할 수 담보물건도 거의 없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담보대출이 아닌 신용대출이 필요하고 채안펀드의 ABCP 매입도 필요한 조치”라며 "일부 대형 증권사가 한은의 대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는 있겠으나, 충분한 수혈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