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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前 M&A로 다각화 포문
정혜인 기자
2020.07.27 06:30:16
① 화약과 화학으로 국내 10대 기업 '우뚝'
이 기사는 2020년 07월 24일 13시 1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정혜인 기자] 한화그룹의 출발은 화약기술에 대한 집념에서 시작됐다. 전쟁통에 사라질 뻔한 우리나라 화약사업을 당시 몇 안 되는 화약 기술자였던 고(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직접 발로 뛰며 다시 일으키면서 한화그룹이 탄생했다. 고 김종희 회장은 화약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른 이후부터는 '사업다각화' 방안을 모색했다. 한화그룹의 화려한 인수합병(M&A) 역사는 바로 이 시점부터 비롯됐다. 


◆ 미군정으로부터 '화약사업' 운영권 취득…한화의 시작점


한화그룹이라는 대장정의 시작은 故 김종희 회장이 1952년 조선화약공판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정은 소유하고 있던 조선화약공판을 입찰에 부쳤다. 그 해 6월 고 김종희 회장은 23억 4568만원으로 조선화약공판 운영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10월 조선화약공판을 인수할 새로운 법인이 필요해지면서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화약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한국화약이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조선화약공판의 기술은 당시 화약을 제조한다기보다는 판매회사에 가까웠고, 제조 공장이던 조선유지 인천화약공장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 김종희 회장은 일본 화약업체들을 만나 화약 생산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에 나섰다. 한 업체와 기술이전을 약속하고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1953년 제3차 한일회담이 결렬되면서 한일 관계 경색에 기술 도입을 실행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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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조선유지 인천화약공장을 인수하고 여기에 다시 집중했다. 정부는 사업을 맡긴 대한광업협회의 복구 및 생산이 더뎌지자, 개인인 고 김종희 회장에 넘겼다. 그는 조선유지 인천공장 복구를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 과거 공장의 설계도면을 갖고 있던 사람을 찾는 데 성공했다. 갖은 노력으로 1955년 조선유지 인천화약공장의 복구공사를 끝냈고, 제조기술이 없어 생산이 불가능한 다이너마이트도 연구개발 노력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기계·화학으로…사업다각화 '드라이브'


화약 분야에서 성공의 맛을 본 고 김종희 회장은 경영 규모와 사업 영역 확대를 꾀했다. 첫 사업다각화 시도는 기계공업 분야였다. 우리나라에 기계공업 분야에 대한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1964년 신한베아링공업(향후 한국베어링공업으로 사명 변경)을 인수했다.


지금까지 그룹의 '중심부' 역할을 해 오고 있는 화학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때쯤이다. 고 김종희 창업주는 기획실에 석유화학 진출 방안을 모색해 보라는 지시를 내리고, 대규모 화학단지를 조성하려 했다. 1965년, 그는 가장 먼저 한국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폴리염화비닐(PVC) 사업에 진출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한화그룹은 활발한 인수합병(M&A) 및 법인 설립으로 그룹 규모를 확대했다. 1968~1969년에 화력발전소, 정유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승인을 정부로부터 받아 발전 및 정유사업에 발을 들였으며, 이후에는 에너지사업을 총괄하는 합작법인 경인에너지개발(SK인천석유화학)을 설립하고 유공(현 SK이노베이션), 호남정유(현 GS칼텍스)를 잇는 제3석유회사를 만들었다.


사세 확장을 위한 공격적인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68년에는 신규 사업을 위해 삼호그룹의 제일화재해상보험(현 한화손해보험)을 2억5000만원에 인수했다. 1973년 9월에는 동원공업을 인수해 사명을 태평양건설로 바꾸고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같은 해 대일유업(현 빙그레)을 인수해 식품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그 결과 1950~1960년대와 비교할 때 1970~1980년대 그룹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화약업이 그룹의 매출과 자산의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1970년대와 1980년대 기계공업, 석유화학사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부로 거듭났다. 


인수 및 설립한 회사들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1980년 사업부문별 자산 비중은 경인에너지가 49.2%, 한국프라스틱공업(한국화성공업 외 PVC 4개사 합병법인)이 17.9%, 한국베어링공업이 13%를 차지했으며 기존의 주력사업이었던 한국화약의 비중은 13%로 낮아졌다. 같은 해 매출액을 기준으로 보면 경인에너지의 매출 비중은 65.5%, 한국프라스틱공업은 17.1%를 기록했다. 한국화약의 매출 비중은 9.4%로 10%에도 못 미쳤다.


석유화학 사업을 비롯한 신규사업들은 한화그룹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는 역할도 했다. 1970년 초반 1000억원을 넘기기 어려웠던 매출액은 1980년에 이르러 약 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산규모도 1000억원 미만에서 4000억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에 1980년,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은 처음으로 국내 10대 그룹 리스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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