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결정적 순간
IMF 파고속 빛난 김승연 '위기관리'
③'버려야 산다' 과감한 구조조정·M&A로 기사회생
이 기사는 2020년 07월 30일 11시 2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정혜인 기자] 김승연 체제 이후, 한화그룹에 오르막길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화그룹 전반에도 긴장감이 퍼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997~1998년 '버려야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대대적인 계열사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애정을 쏟아 부은 계열사지만 미련 없이 떠나 보내고 다시 출발점에 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숨 가쁜 인수합병…1991년 자산규모 5조원 그룹으로 우뚝


선대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숨 가쁜 인수합병(M&A) 역사를 이어갔다. 석유화학 분야는 한층 강화하고 서비스·레저 등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한화그룹 화학사업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김승연 회장은 1982년 다우케미칼이 한양화학 사업을 철수키로 했을 때 한양화학(사업회사), 한양화학지주(한양화학 주식 보유), 다우케미칼이 한국에 세운 100% 자회사 '한국다우케미칼' 3곳을 인수했다. 한양화학은 처음에는 접착제, 잉크, 바닥재 원료로 사용되는 폴리염화비닐(PVC)을 주로 생산했지만, 1970년대부터 폴리에틸렌(PE), 염화바이닐(VCM) 등으로 생산제품을 확대했다. 한화그룹은 이외에도 1988년 벨기에 솔베이(Solvay)와 합작해 한양소재를, 독일 바스프와 합작해 한양바스프우레탄을 세우면서 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승연식 M&A는 '서비스·레저' 분야에서도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시작은 1985년 명성콘도를 운영하던 정아그룹(이후 한국국토개발로 사명 변경, 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이듬해에는 슈퍼마켓 분야에서 국내 최대 업체였던 한양유통을 인수했다. 한양유통이 운영하던 쇼핑센터는 한화그룹에 편입되면서부터 '갤러리아'로 이름을 바꿨고 한양유통의 사명 역시 향후 한화갤러리아로 변경했다.


김승연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후 한동안은 국가 경제 발전 속도에 맞춰 한화그룹도 빠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 초반 1조원에 한참 못 미치던 자산 규모는 1991년 5조원으로 증가했다. 당시 그룹 전체 자산의 계열사별 비중은 경인에너지와 한양화학이 각각 23.6%, 29.8%를 차지했으며 한국화약, 제일증권, 한국종합기계 등이 각각 13.5%, 12%, 6.5%로 그 다음을 이었다. 


◆갑자기 닥친 IMF…존폐 위기에 선 한화


하지만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외환위기가 가져온 위기는 꽤 심각했다. 1997년 말 그룹의 부채 규모는 11조1382억원에 달했으며 부채비율은 1214%를 기록했다.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다른 기업집단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갑자기 닥친 고난을 헤쳐 나갔다. 외환위기 전 32개였던 계열사 수를 15개까지 줄였다.


가장 먼저 칼을 댄 것은 '합작회사'다. 첨단소재 진출 차원에서 1988년 독일 바스프와 만든 합작회사인 '한화바스프우레탄' 지분 50%를 1200억원에 바스프에 넘기면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한화기계가 일본정공(NSK)과 초정밀 베어링 생산 및 판매를 위해 만든 합작사 한화NSK정밀 지분 50%(매각가 200억원)를 일본정공에 매각했다. 이외에도 SKF한화자동차부품, 한화GKN(매각가 19억원) 지분을 각각 스웨덴 베어링 업체인 SKF와 영국 기계부품회사 GKN 자회사 오토모티브드라이브라인에 넘겼다.


합작회사 매각은 서막에 불과했다. 다음은 그룹 외형의 절반에 해당하는 한화에너지(현 SK인천석유화학), 한화에너지프라자(현 현대오일뱅크) 등의 매각이 이어졌다. 두 회사가 정부의 '5대 빅딜' 안에 들면서 한화그룹은 한화에너지(정유부문)와 한화에너지프라자를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김승연 회장은 자발적인 결정이 아님에도 국내 기업집단 중 가장 빠르게 해결하면서 정부의 뜻에 수긍했다. 결론적으로 한화그룹은 이들을 현대그룹에 넘긴 대가로 부채 4조2000억원을 한방에 해결했으며, 긴박하게 흘러가던 유동성 위기도 정부와 채권단의 도움을 받아 벗어날 수 있었다.


1997년부터 1998년, 약 1년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화그룹의 자산 규모는 12조원에서 7조원으로 줄었다. 차입금 규모 역시 8조원에서 3조원으로 감소했다.


유동성 위기를 무사히 해결한 한화그룹은 다시 출발선에 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화그룹은 대림산업과 반반씩 투자해 여천공단에 납사분해시설(NCC)을 설립하면서 석유화학 분야의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NCC 설비는 석유화학의 꽃인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시설로, 석탄분해설비(CTO)·에탄분해설비(ECC)와 달리 납사를 원재료로 하는 석유화학 업체의 핵심 제조설비다.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그 다음 도전한 '대한생명 인수'였다. 한화그룹은 금융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보험회사를 인수해 사라진 정유부문(한화에너지)의 자산, 매출액 규모를 채우고자 했다. 결국 2002년 한화그룹은 호주 맥쿼리생명, 일본 오릭스 금융그룹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대한생명 지분 51%를 8236억원에 인수하면서 보험업계에 진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IMF로 닥친 위기도 인수합병(M&A)으로 극복해냈다. 한화그룹은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한 효과로 2003년 현대그룹, 금호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을 제치고 재계 순위를 3단계 올렸다. 그룹 자산 규모는 2002년 9조9000억원에서 2003년 14조3000억 원으로 44.4% 증가했다. 당시 대한생명은 그룹 전체 자산 비중의 70% 이상, 매출액 비중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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