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기자]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부친에 대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차남인 조현범 사장으로 기울어진 그룹 경영권 이양이 다시 한번 새로운 기로에 서게 됐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조희경 이사장은 이날 서울가정법원에 조양래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를 접수했다. 한정후견은 질병이나 노령 등에 의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 법원 결정으로 선임된 후견인에게 보호를 받는 제도다. 조 이사장 측은 부친인 조양래 회장이 차남에게 지주회사 주식을 승계한 과정이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인지 객관적인 판단을 받고 싶다는 것을 청구 취지로 밝혔다.

법원은 조 회장의 다른 가족들을 법원으로 불러 의견조회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조 회장의 정신건강상태를 판별하기 위해 병원에 의뢰해 정신감정 절차도 진행된다. 그 결과에 따라 법원은 조 회장에 대해 후견인 지정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조 이사장 측은 "조양래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 전부를 매각했는데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면서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으며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의 운영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 회장이 갖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면서 "이런 결정들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말 조양래 회장은 지주회사 보유지분 2194만2693주(23.59%) 전량을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게 매각했다. 이를 통해 조현범 사장은 지주회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율이 종전 19.31%에서 42.9%로 대폭 뛰며 단숨에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해 조양래 회장이 모든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이후 3세 형제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장남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지주회사를 맡고,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주력계열사를 책임지는 구도였다. 지주회사 지분율도 조현식 부회장이 19.32%, 조현범 사장이 19.31%로 균형을 맞춰왔다.

하지만 조양래 회장이 지주회사 보유 지분 전량을 차남에게 넘기는 결단을 내리면서 그룹내 영향력은 크게 달라졌다. 형인 조현식 부회장의 지분이 동생 조현범 사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차남 승계 구도가 명확해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조희경 이사장이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을 신청하면서 경영권 이양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에서 성년후견 신청을 용인하고 조 이사장이 후견인이 된다면 후견인 입장에서 조양래 회장의 주식 매각행위에 대한 무효 소송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한정후견인은 법원의 판결이 있는 때부터 비정상적 의사결정에 대한 취소가 가능하다. 한정후견을 신청한 시점 이전에 이뤄진 지분매각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장녀인 조 이사장이 후견인이 되고 조 회장이 지분을 넘길 당시에도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후견인 입장에서 행위무효 소송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측은 이번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와 관련해 "조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다. 조양래 회장에게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