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용병술과 통찰력
'경영권분쟁+총수부재', 보수적 기업문화 혁신실패···신동빈 '친정체제' 주목해야


[팍스넷뉴스 김광현 부회장] 20여년 전 단독인터뷰건으로 롯데 신동빈회장을 처음 만나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의 첫 인상은 온화하면서도 '신중 또 신중'이었다. 비젼이나 소신 넘치는 발언들은 거의 없었다. 강력한 아버지 그늘 밑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그를 두고 임직원들은 '예절을 중시하고, 인간미가 넘치고, 임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고 했다.


2011년 그룹회장이 된 그는 2012년 황각규 부회장을 그룹 2인자로 중용했다. 이른바 '황각규사단'의 시작이다. 황각규는 신 회장이 일본에서 귀국해 한국롯데에 처음 진입했을 때 첫 직속관계를 맺었던 인물이다. 


두사람 조합은 초기엔 쾌조였다. 하이마트와 삼성 화학부문 인수 등 굵직굵직한 M&A건들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중국 등 해외진출에도 추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몇년 가지 않았다. 2015년부터 경영권분쟁, 사드사태, 최순실사태, 구속과 긴 재판,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이 한해도 쉬지 않고 계속 터졌기 때문이다. 그룹 이미지와 경영실적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필 또 이 즈음부터 롯데가 오랜시간 최강자 위치이던 백화점 마트 등 유통분야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업흐름의 변화와 각종 규제로 e커머스가 대세가 되기 시작했는데, 롯데유통은 어쩐 일인지 온라인 모바일붐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유통 부진을 보완해주던 '새 캐시카우' 롯데케미칼도 작년부터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도 그룹의 양대 주력업종이 모두 좋지 않았던 것이다.

 

올들어 발생한 코로나19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그동안 괜챦던 식음료 호텔 서비스 등 다른 분야들도 모조리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지금은 잘되는 부문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인사철도 아닌 한여름, 신동빈 회장은 오랜 핵심측근 황각규 부회장을 교체했다. 그룹 경영전략실장도 함께 경질했다. 롯데그룹 창립 이후 정기인사철 아닌 때에 그룹 최고위 임원 인사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언론들은 '황각규 등에 사업부진의 책임을 묻고, 대대적 쇄신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롯데경영자들은 총수구속 등 일련의 사건들에다 코로나까지 겹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은 그보다 더한 사건들 속에서도 삼성전자를 오늘날 세계 최강기업으로 키워냈다. 현대차와 SK 등도 비슷하다. 


롯데의 전문경영인들은 그랬다고 보기가 어렵다. 유통 화학 등 주력업종의 노쇠화는 이들 사건·사태들과 관계없이 이미 벌어져 온 일이었다. e커머스의 도입부진은 롯데 특유의 보수적 기업문화 탓이란 지적이 많았는데도, 기업문화혁신은 아직도 지지부진해 보인다. 화학부문은 기초소재 한우물만의 오랜 호황에 안주한 나머지 LG화학 같은 업종다각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인사 비수기'의 전례 없는 전격인사를 보면 경영상 문제들 외에 무언가 다른 문제점들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황각규사단'만의 책임일까? 아니라고 본다. '널리 인재를 구한 인사가 아니라 친소관계 인사'라는 지적이 중용 당시부터 많이 나왔는데도, 황각규사단을 중용한 사람은 바로 신동빈 회장 자신이었다.  총수의 책임 또는 임무라면 우선 사내외에서 최고로 검증된 에이스들을 2인자나 주력 계열사 사장단에 제대로 앉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경영과 나머지 인사를 전폭위임하되 문제가 심각할 때는 즉각 개입하는 것이다. 


신 회장은 특히 엄중한 전환기였던 지난 수년동안 여러 이유로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본다. 신 회장의 성격상 '충분히 밀어주고 믿어주고'는 잘했겠지만 과연 최고-최적의 인사들을 그 자리에 제대로 앉혔는지는 의문이다. 

 

고(故) 구본무 전 LG 회장은 주변의 반대에도 90년대부터 일찌감치 2차전지 투자를 과감히 결단했다. 그 결과 LG화학은 오늘날 코로나에도 끄덕없는 세계적인 전기차배터리기업으로 변신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조금 늦었다는 지적에도 몇년전 'SSG'를 부랴부랴 출범시켜 지금은 오프라인유통의 부진을 온라인에서 효과적으로 보충해내고 있다. 


지난 몇년간 신 회장은 이런 선제적인 결단과 통찰력을 보여준 적이 있는가. 롯데는 총수나 전문경영인들 모두 용병술, 통찰력, 조직문화혁신 등에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얘기다. 


롯데는 앞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롯데지주의 조직을 대폭 줄이고 전략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기업인수합병(M&A)과 신사업발굴을 신 회장이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친정을 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친정체제에도 능력이 널리 검증된 우수한 보좌진은 필수다. 신 회장 주변의 새 인물들은 누가봐도 과연 최고의 에이스들일까?  


이제 총수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7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 같은 경우 수십만명의 일자리가 달린 문제다. 이제라도 우선 사람을 제대로 잘 분별하고, 그들을 잘 지휘해, 잘 해나가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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