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양도웅 기자]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절반가량 줄어드는 등 '어닝쇼크'를 겪은 한국씨티은행이 수장을 교체한다.
외견상 임기 만료까지 두 달여를 앞둔 박진회 현 행장이 세번째 연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조직 변화를 위해 용단을 내린 모양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고려해도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악화한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 행장이 조기 퇴임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 '자신감 넘쳤던' 박진회 행장, 임기 못 채우고 '퇴장'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진회 씨티은행장(사진)은 이달 31일까지만 행장직을 수행하고 조기 사퇴한다. 박 행장의 당초 임기는 올해 10월27일까지였다. 그는 지난 2014년 10월 최초 임기를 시작해 2017년 10월 한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씨티은행 안팎에서는 박진회 행장이 3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전임인 하영구 행장이 약 10년간 씨티은행을 이끈 전례가 있을 뿐 아니라, 박 행장이 앞장서 추진한 효율성 극대화 전략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 행장은 첫 번째 임기가 종료되던 2017년 국내 영업지점 규모를 129개에서 39개로 줄이는 파격을 단행하며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가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과 비대면 영업 확대의 중요성이 고개를 들던 시점이었지만, 국내 금융권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감축 규모에 많은 금융권 인사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 행장은 당시 지점 감축 계획에 대해 "4차 산업혁명과 핀테크 쓰나미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을 통해 우리 '몸집'으로도 지점 1000곳인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을 손에 쥐었다는 확신이 든다"고 자신했다.
이같은 파격적인 전략은 씨티은행 이사회를 포함, 모회사인 씨티그룹이 박 행장의 연임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씨티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방대하게 운영하던 조직을 슬림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매년 약 1000억원을 배당하는 한국법인을 두고선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점포 줄이면 뭐하나···순이익·수익성·점유율 모두 곤두박질
하지만 박 행장이 추진한 씨티은행의 효율화 전략은 3년여가 흐른 지금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박 행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조기 사퇴를 결정한 배경에도 점포 효율화로 대표되는 그의 전략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고 이사회와 씨티그룹의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상반기 씨티은행의 당기순이익(연결기준)은 899억9700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1.19% 줄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당금 적립 등을 고려해도 실적 감소 폭이 크다. 국내 시중은행 중 같은 외국계인 SC제일은행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전년동기대비 21.1%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씨티은행의 실적은 뼈아프다.
씨티은행의 점유율도 매년 하락하고 있다. 박 행장은 2017년 영업지점 감축 계획 발표 당시 "영업점 숫자가 시장점유율을 결정하는 전통적인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2019년 말 씨티은행의 국내 예수금 시장 점유율은 1.95%로 2017년 말 대비 0.15%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국내 대출금 시장 점유율도 0.27%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씨티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 악화가 가장 치명타이다. 점포 감축의 제1 목표가 경영효율성 강화였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씨티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0.21%로 전년 말대비 0.33%포인트, 전년동기대비 0.6%포인트나 하락했다. ROA 0.21%는 박 행장 취임 이후 최저치 ROA는 은행이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다. 높을수록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같은 기간 SC제일은행의 ROA는 0.48%로 전년동기대비 0.03%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3년 전 박 행장과 씨티은행이 목표로 삼았던 '경영효율화 확대'는 현재 기준으론 달성하지 못한 셈"이라며 "씨티은행이 자랑하던 디지털 영업 부문에서도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아, 씨티은행은 새로운 수장 선임과 함께 새로운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씨티은행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유명순 수석부행장을 행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유명숙 수석부행장의 행장 직무대행 임기는 내달 1일부터 차기 행장 선임 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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