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혜인 기자] 롯데케미칼이 미국 에탄크래커(ECC) 설비 투자 효과를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업황이 납사 중심의 납사크래커(NCC)에 유리하게 조성된 반면, 에탄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ECC에는 불리하게 흐르면서 좀처럼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까닭이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ECC, 에탄글리콜(EG) 설비를 운영하고 있는 자회사 LC USA(종속회사 포함)가 올해 상반기 400억원의 순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LC USA의 지난해 말 기준 순이익은 1114억원에 달했다. 

LC USA의 급격한 손실은 예상치 못한 업황 부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ECC 설비가 생산을 본격화 한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LC USA는 각각 346억원, 32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25%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반면 올해는 1분기 영업이익 139억원, 영업이익률 12.7%를 기록했다. 2분기에는 심지어 128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LC USA는 롯데케미칼이 원료 다변화를 위해 미국 현지에 설립한 공장이다.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원유에서 뽑은 납사(NCC 설비)를 이용해 에틸렌을 생산하는데, 롯데케미칼은 원료 다변화를 위해 원유가 아닌 셰일가스에서 나온 부산물로 에틸렌을 뽑아내는 ECC 공정을 3조6000억원을 들여 지었다.

롯데케미칼의 ECC 도전은 고유가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유의 가격 상승이 계속되면서 NCC의 원재료인 납사 가격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량이 급증한 셰일가스와 셰일가스 부산물인 ECC 설비의 원재료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셰일가스의 중심,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투자를 결정한 이후부터 원유 가격의 흐름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롯데케미칼이 ECC 투자를 결정했을 당시인 2014년 100달러가 넘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은 2016년 30달러대로 떨어졌다. 심지어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영향으로 유가가 마이너스(-) 기록하는 일도 발생했다.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원유에서 뽑는 납사 가격은 크게 하락했지만, 에탄 가격은 셰일가스 업체들의 가동 중지 영향 등으로 오히려 반등했다. 올해 사정만 보면 ECC보다는 NCC에 훨씬 유리하게 업황이 조성된 것이다.  지난해 말 톤당 140달러 수준이었던 에탄 가격은 올해 5월 기준 160달러대까지 상승했다. 반면 국내 NCC 업체들은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납사 가격도 하락해 원재료 값 하락 효과를 쏠쏠하게 봤다. 올해 2분기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전분기 대비 각각 79%, 14% 증가한 4347억원을 기록한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NCC 업체가 코로나19에도 예상치 못 한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반면, 미국 현지의 ECC는 수익성이 나빠졌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 내에서 가동을 중단하거나 도산한 셰일가스 업체들이 많아진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에 따라 가격 변동성을 잡기 위해 시도한 롯데케미칼의 ECC 도전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며 "사실상 저유가 기조가 시작된 2015년부터 업황은 ECC보다는 NCC에 유리해, 당분간 ECC를 통한 원료 다각화 효과를 극대화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