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마블
게임 퍼블리싱 생태계 '일번지'
① 방준혁 의장 파격 실험,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어져


[팍스넷뉴스 김경렬 기자] 넷마블 창업자 방준혁 이사회 의장은 웹보드 게임이 포화된 시장에 '퍼블리싱'이라는 새로운 사업 전략을 제시했다. "남의 게임을 대신 홍보해준다"는 퍼블리싱 사업은 "내 게임을 내가 서비스한다"는 20년 전 업계 정설을 뒤집었다. 덤으로 넷마블은 큰 수익을 얻었다. 마케팅의 중요성을 실감한 게임개발사들이 전문 퍼블리셔를 찾으면서 퍼블리싱 사업이 게임사들의 주요 수익원으로 각광받게 됐다. 


넷마블은 2000년 웹보드게임 개발사로 출발했다. 같은 해 11월 게임포털 '넷마블'을 열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게임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온라인 게임 시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IMF 이후 PC방 창업자가 많아졌고, 게임 이용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유저층을 모으려는 게임사들이 게임 지식재산권(IP) 개발에 대거 참여했고 업체 간 경쟁은 과열됐다.


넷마블도 초창기 자체 제작한 '넷대전 테트리스', '알까기' 등 캐주얼 게임을 서비스했다. 게임을 대부분 무료로 제공해 큰 수익은 얻지 못했다. 웹보드 플랫폼 사업은 이미 한게임, 네오위즈 등이 선점해 포화 상태였고 한발 늦은 넷마블은 탈출구가 필요했다. 


넷마블 설립자인 방준혁 의장은 '퍼블리싱'이라는 복안을 내놓았다. 다른 회사가 개발한 게임을 질 높은 마케팅으로 홍보해주자고 제안했다. "내가 만든 게임은 내가 서비스 한다"는 통념을 뒤집는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퍼블리싱 사업 전면에는 방준혁 의장의 최측근인 권영식 현 넷마블 대표를 내세웠다. 권영식 대표는 마케팅 대행업체 대리로 일하면서 방준혁 의장과 친분을 쌓았는데 그 동안의 마케팅 노하우를 살려 퍼블리싱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넷마블의 첫 번째 퍼블리싱 게임은 '라그하임(제작 마상소프트)'이다. 라그하임은 국내 두 번째 출시된 국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2001년 8월 오픈베타테스트를 실시했다. 이듬해 상용화했는데 넷마블 게임 유저들이 라그하임에 접속하며 시너지를 발휘했다. 


넷마블의 퍼블리싱은 계속됐다. 주요 출시작은 '노바1492(RTS, 2002년)', '다크아덴(RPG, 2002년)', '캐치마인드온라인(캐쥬얼, 2002년)', '스톤에이지(RPG, 2003년)', '그랜드체이스(액션, 2003년)', '서든어택(FPS, 2005년)' 등이다. 서든어택은 넥슨에 이관(2011년)되기 전까지 600억원 매출을 올리며 넷마블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퍼블리싱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넷마블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넷마블이 모회사 플레너스를 역 인수합병(M&A)할 정도였다. 플레너스는 당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다. 2003년 합병시 넷마블의 자산가치는 1만9530원으로 플레너스(8500원)보다 높았다. 합병 조건에 따라 플레너스는 기준주가(2만582원), 넷마블은 본질가치(41만7236원)를 적용해 1:20 비율로 합병했다. 방준혁은 기존 플레너스 주식 57만2850주를 포함해 신주 485만3141주를 받았고, 플레너스는 합병신주를 발행받지 않았다. 방준혁은 플레너스 지분을 23% 이상을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듬해 넷마블은 8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퍼블리싱을 통한 성장 로드맵은 이어졌다. 온라인 퍼블리싱은 2005년 모바일게임 퍼블리싱 사업으로 이어졌다. 피처폰 시절 출시한 게임이라 지금처럼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주축 사업은 아니었지만 쏠쏠한 매출을 일으켰다. 해당년도 영업수익은 845억원으로 전년대비 18억원 상승했다. 


2006년부터는 뚜렷한 성장세가 나타났다. 게임포털 국내매출은 977억원으로 전년대비 25%(195억원) 껑충 뛰었다. 총 영업수익은 1000억원 선을 돌파한 1052억원을 기록했다. 다음해인 2007년부터는 1598억원, 1936억원, 2206억원, 2506억원 등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결국 2010년에는 5년전보다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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