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나? 시켜주면 더 잘할지…
건설업, '남자'가 하는 거친 일이란 오랜 편견 버려야

[팍스넷뉴스 전세진 기자] 지인이 임신 소식을 알려올 때마다 최고의 화두는 아기의 성별이다. 요즘은 아들보다 딸이 귀하게 대접받는 분위기다. 장남이 중심이 되는 유교문화에 대해 점차 사회적 공감대가 줄고 있는데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까닭이다. 대체로 무뚝뚝한 아들 대신 사근사근한 딸과의 정서적인 친밀도가 높은 점도 딸을 원하는 이유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건설업계만큼은 이같은 '여아선호'의 대세가 적용되지 않는 듯 보인다. 같은 오너가 자녀라 하더라도 철저한 장자승계 원칙이 지켜지거나 아들과 딸의 몫을 확연히 구분하기도 한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기준 50위권내 업체들에서도 이런 경우가 두드러진다.


시공능력평가 18위를 기록한 계룡건설산업은 대전·충청권에서 업력 50년을 자랑하는 중견건설사다. 고(故) 이인구 명예회장은 생전 8명의 딸들을 '패싱'하고 막내 이승찬 사장에게 왕관을 넘겼다. 이 사장은 20대 중반부터 지분을 늘리며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계룡건설산업의 최대주주(22.9%)가 됐다. 8명의 누나들(선숙·선향·미복·순복·애복·화복·희복·정복)은 지분 각 1.2%씩만 보유한채 남동생의 지배력을 떠받치고 있다.


호남지역에 뿌리를 둔 시공능력평가 26위의 우미건설은 장자승계의 정석을 보여준다. 장남 이석준 사장은 지주회사인 우심홀딩스(54.9%)와 주력업체인 우미건설(9.17%)의 최대주주다. 두 살 아래 여동생 혜영 씨와 막내 남동생 석일 씨의 지분을 합쳐도 이 사장의 지분을 넘지 못한다. 우미건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진 혜영 씨는 남동생보다도 보유지분율이 적다. 장남→차남→딸 순서의 지분 분배다.


아이에스동서의 권지혜 전무 역시 최근 회사에서 퇴사하며 남동생 권민석 대표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한 모양새가 됐다. 아버지 권혁운 회장은 2018년 대표직과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며 그 자리를 장녀가 아닌 아들에게 물려줬다. 권 전무는 지난해 1월 아이에스동서의 미등기임원에서 사임한 데 이어 4월 일신홀딩스의 사내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건설업은 '남자'가 하는 거친 일이란 오랜 관념 탓에 여성 인력의 눈에 띄는 활약이 적다. 이같은 승계 사례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다.


유통업계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매년 여동생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과의 경영능력 비교설에 오르내린다. 부진한 이마트에 비해 정 사장이 이끄는 백화점은 불과 코로나19 전까지 사상 최대실적을 갱신하는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CJ그룹의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이 이른바 남매경영을 통해 각각 식품,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한축을 일궈낸 사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건설업계는 새 캐시카우 찾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 규제와 경기변동 리스크에 취약한 주택건설사업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폐기물, 재생에너지, 레저, 프롭테크 등 분야도 제각각이다. 이들을 남자만의 사업영역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오빠나 남동생 뒤에 가려진 그녀들이 활약할 무대도 있다는 이야기다. 밖으로는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으며 안에선 아직 유교문화를 못벗어난 아이러니는 뭔가. 누가 또 아나? 시켜주면 더 잘할지.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팍스넷뉴스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