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용료와 '디지털 新쇄국'
국내 ISP, 해저 광케이블 투자 안하다 데이터 사용 급증하자 CP에 망사용료 '전가'

[팍스넷뉴스 조아라 기자] "옛 사람의 처방을 가지고 오늘날의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청나라 일본 주재 공사관인 황준헌은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인 김홍집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이 강해지려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되 관세를 조절해 통상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1880년 산업혁명이 태동하던 시절, 조선을 둘러싸고 열강의 세력 다툼이 벌어지던 때다. 김홍집의 개혁은 유교관을 중시한 국내 유생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완미(脘迷, 완고하여 사리에 어둡다)'라고 통탄했다. 변화와 성장의 시대에 명분을 취하고 실리를 버리며, 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아둔함을 탓한 것이다.


140년이 지나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또 다시 격변기를 맞는 가운데 '연결성'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가 오가는 도로인 '통신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사방으로 길을 내 국력을 키웠던 로마가 그랬고, 기차를 깔아 물자를 옮긴 제국주의 열강이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 경제의 원유인 데이터도 연결성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일찍이 세계 각국은 해저 광케이블 부설에 나서며 대륙간 데이터 도로 확보 전쟁을 벌였다. 글로벌 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한편, 통신 인프라를 제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10년 전 구글과 페이스북이 해저케이블 투자에 적극 나섰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사가 투자한 케이블 길이는 15만5000km로, 같은 시기 부설된 글로벌 케이블의 3분의 1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 설치된 400여개의 해저케이블 발주자는 대부분 통신사다. 이들은 국제망 1계위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Tier 1 Internet Service Provider, 이하 국제 1계위 ISP)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국제 1계위 ISP끼리는 상호무정산 원칙에 따라 비용을 내지 않고 국제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하위 ISP에게 통신망을 제공하고 사용료를 받는다.


미국은 AT&T와 버라이즌(Verizon)을 비롯한 10곳의 국제 1계위 ISP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과 홍콩, 인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국가들이 국제 1계위 ISP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ISP들도 2016년부터 13만8000km의 케이블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가 무서운 확장세를 보여 미국의 전방위 견제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국제 정세가 이러한데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는 국제 1계위 ISP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은 꽤나 아쉬운 대목이다. 그동안 국내 ISP들은 막대한 자금을 마케팅에 쏟으며 점유율 경쟁에 열을 올렸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간 20억달러( 약 2조3754억원)가 해저케이블 준설 프로젝트에 쓰였다. 당시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ISP들은 연평균 4조8000억원을 마케팅에 썼다. 국제 1계위 ISP 지위를 충분히 확보하고도 남았을 규모다.


현재 인터넷 트래픽의 99%는 해저케이블을 통해 발생한다. 엉뚱한 곳에 돈을 쏟아 부어 '데이터 무국경 시대'를 대비하지 않은 국내 ISP들은 해외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 비용을 국제 1계위 ISP에 고스란이 부담하고 있다.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자 국내 정부와 ISP는 망 품질 유지와 증설 의무를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전가시키는 것으로 해결을 볼 심산이다. 대표적인 예가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사용료 논란이다.


이는 글로벌 1계위 상호무정산 원칙에 어긋난다. 2016년 정부는 ISP 상호무정산 제도를 폐지했다. ISP들은 망사용 부담이 늘자 CP에게 비용을 전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에게 망사용료를 받으려는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망중립성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망중립성 원칙이란 ISP가 특정 콘텐츠나 기업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담는 가치로, 통신망의 공공재적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도로 확충 비용을 자동차 제조사에게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무임승차' 프레임을 짜 넷플릭스와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캐시서버를 증설하겠다는 대안을 내놨지만 SK브로드밴드는 망사용료를 고집하며 사적 계약 문제를 정부에 가져가 중재를 요청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국내외 CP에게 망 품질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일명 '넷플릭스법'을 내놨다. 해당 법이 통과되면 국내 CP의 해외 진출은 고사하고 국내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과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해외 CP에게 망사용료를 강제할 경우 국제 통상 위반 가능성도 언급된다. 


ISP는 고객이 납부한 요금으로 통신망 품질을 유지하고 증설 할 1차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 국내 ISP는 밥그릇 싸움을 멈추고 글로벌 네트워크에 투자해 국제 1계위 ISP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 그것이 ISP와 CP의 부담을 줄이고 데이터 경제를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국내 일부 ISP와 정부는 시류에 어두워 진단을 제대로 못하고 '망사용료' 부과라는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 만약 이 상황을 김홍집이 본다면 이렇게 말 할것 같다. "옛 사람의 처방을 가지고 오늘날의 병을 치료하다가는 병을 제대로 못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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