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왕의 초상화

[팍스넷뉴스 정호창 부장] # 옛날 한 용맹한 왕이 있었다. 그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용감하게 앞장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불행히도 전투 중 한쪽 눈을 잃고 말았다.


왕국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때가 왔다. 궁정화가는 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바쳤다.


왕은 한쪽 눈이 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묘사된 그림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놀란 신하들은 황급히 다른 화가를 찾아 다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두 번째 화가는 왕의 실명한 눈을 온전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림을 본 왕은 전보다 더욱 진노해 화가의 목을 베어 버렸다. 거짓을 그려 자신을 기만했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되자 아무도 왕의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신하들은 전전긍긍했고 왕국은 공포로 얼어붙었다.


어느 날 한 시골화가가 나타나 왕의 얼굴을 그려보겠다고 자원했다. 그의 그림을 본 왕은 흡족해하며 큰 상을 내렸다. 시골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왕의 성한 눈이 있는 쪽 얼굴의 옆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 그리스 설화에 바탕을 둔 '애꾸눈 왕의 초상화'란 이야기다. 주로 시골화가를 통해 대변되는 지혜로움이나 창의력, 발상의 전환 등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 인용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 보면 이 이야기는 불편한 구석이 적지 않다. 왕을 흡족하게 만든 시골화가의 초상화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왕의 본모습을 전달할 수 없다. 반쪽짜리 진실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쟁을 벌였던 이웃나라에서 애꾸눈 왕을 조롱하거나 승전 기록을 남기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왕의 상처입은 눈 쪽 얼굴만을 묘사해 초상화를 그렸다면 어떨까. 아마도 후세 사람들은 애꾸눈 왕을 '장님 왕'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요즘 우리 주위에서 자주 목격된다. 사안을 객관적으로 살피기 보단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으로 진실을 곡해해서 편을 나눠 싸운다.


얼마 전 검찰이 전격적으로 결정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건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 개인만의 이익을 위해 진행된 '불법합병'이라고 주장하고, 이 부회장 측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합법적 경영활동'이라 맞서고 있다.


검찰은 애꾸눈 초상화를, 삼성그룹은 온전한 눈의 초상화만을 각각 내놓고 서로가 자기 것만이 진실이라 주장하는 형국이다.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한민국 재계 1위 그룹의 총수를 '범죄인'으로 봐야할 지, 국내 경제를 이끄는 대표적 '경영인'으로 보고 응원해야 할 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일을 진행한 당사자나 신(神)이 아닌 이상 제3자의 시각으로 사안 속 진실이나 숨은 의도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안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단호히 '불법'과 '범죄행위'라 단정하고 있는 검찰의 주장을 무조건 신뢰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당사자의 주장이므로 삼성 측 항변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으나, 얼마쯤은 '변명'이 담겼을 것이므로 이 역시도 100% 믿어주긴 어렵다.


이제부터는 법원의 시간이다. 치열한 법정공방을 통해 판사는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부디 그 그림이 비록 왕을 화나게 했으나 가장 사실적 모습을 담고 있는 궁정화가의 초상화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팍스넷뉴스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
외풍 몰아치는 삼성, '삼중고' 어쩌나

사법·입법리스크에 사세 확장하는 라이벌까지 '진퇴양난'

이재용 기소, 9000억대 엘리엇 소송 불똥튀나

엘리엇 주장-검찰 논리 일맥상통…李 수사자료 재요청 가능성↑

"검찰, '이재용 기소' 목표 정해놓고 수사"

이재용 변호인단, 강력 반발…"부당기소, 법정에서 밝혀 나갈 것"

이재용 검찰 기소...제동걸린 '뉴 삼성' 행보

대규모 투자 등 사업전략 차질 우려

이재용 3년반만에 또 법정行…이번엔 '불법승계 의혹'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권고 불구 '불구속 기소' 결정

합병 5년, 삼성물산 기업가치 변화는

③검찰, 주가 하락으로 구주주 피해 vs 바이오 사업 시너지… 순자산가치 1.5배 급증

모직-물산 합병비율, 부적절했나

⑤자본시장법상 산정절차·방식 문제없어···특정회사 할증·할인시 '배임이슈' 노출

검찰 주장,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될까

① 승계용 불법합병 단정, 다른 가능성 배척...전략적 합병 소명시 '이재용측 유리'

삼성금융지주 탄생?···산 넘어 산

④국회에 막힌 중간금융지주법···거대 보험사 매각도 어려워

'합병 없었다면' 삼성물산 주가 올랐을까

④'건설경기↓+성장동력 상실', 하락폭 확대 가능성… 통합후 재무구조·건전성 향상

물산 자사주매각, KCC '전략적 투자' 기회

⑥ 최정상급 건설사·건자재 업체간 협업 목적···지분 제휴 '백기사' 전통적 경영기법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시세조종일까

⑦증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병후 추가 자사주 매입 '주주환원책 유지'

삼성바이오 회계분식..고의 or 과실

⑧2015년 하반기 임상3상 완료 '상업화 임박'···콜옵션 실질적 권리변경 '합리적'

'허위공표·고의은폐' 위법성, 조건은?

⑨ M&A 등 경영활동, 계약까지 '보안유지' 필수…에피스, 나스닥 상장 가능성 '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