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입찰' 담합 유도하는 입찰시스템
'1개 백신·1개 제약사', 제약산업 특성 반영 못하고 복수입찰만 강요

[팍스넷뉴스 민승기 기자] '할 말은 많으나 하지 않겠다'는 말을 줄인 신조어 '할많하않'. 백신입찰 담합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제약사들의 속내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2016년~2019년 국가예방접종사업(NIP)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혐의로 제약·유통업체 임직원들을 재판에 넘겼다. 여기에는 GC녹십자, SK디스커버리, 보령바이오파마, 유한양행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과거 정부가 발주한 자궁경부암, 폐렴구균 백신 등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제약사들이 도매업체를 들러리로 내세우고 백신 물량이나 가격을 짬짜미 했다는 것이 검찰측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제약사들은 내심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제약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복수 입찰을 강요하는 조달청의 입찰 시스템 정책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16년 처음으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NIP사업에 포함했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2가(제품명: 서바릭스), 4가(가다실), 9가(가다실9)로 나뉘며 국내에는 각각 한 제품씩만 출시돼 있다. 정부는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한 첫 NIP 사업에서 2가와 4가로 나눠 진행했다. 당시 서바릭스과 가다실의 국내 판권은 각각 보령바이오파마와 SK디스커버리가 보유하고 있었다. 가다실의 판권은 2017년 GC녹십자로 넘어갔다.


문제는 입찰 과정에서 발생했다.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백신은 1개 제품에 불과했지만 조달청은 "규정상 반드시 2개 이상 복수 업체가 입찰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복수입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찰 후 재입찰하는 식이다. 실제로 2016년 5월 '4가 백신 입찰' 과정에서 특정 업체가 단독 입찰했지만 유찰됐다. 보건당국의 무언의 입찰 참여 압박 속에 결국 제약사들은 가상의 경쟁자를 만들어 내는 편법을 써야 했다.


편법을 쓴 제약사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제약사들이 NIP 입찰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기 위해 담함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인 정부 입찰 시스템의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국내 백신 자급률은 50%에 불과하다. 이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해서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업계 내부에서는 '차라리 NIP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문제가 생기면 처벌부터 하고 보자'는 처벌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NIP사업의 목적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예방접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련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함이다. 무엇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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