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 '소실점' IFRS17
사실상 2년내 도입…보험업 '현실' 보여주는 단초

[팍스넷뉴스 신수아 기자] # 중세 유럽 회화는 눈 앞의 피사체와 저 멀리 보이는 사물이 동일한 깊이감을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대상을 화면 위나 중앙에 배치하고 부수적인 대상은 주변에 놓았다. 제아무리 현실 속 가까워도 중요하지 않다면 위치나 크기가 축소됐다. 이러한 엇박자 구도 때문에 때론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장면을 내려다보는 느낌마저 불러일으켰다. 입체감과 원근감 대신 색채와 효과가 도드라졌다. 현실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시각 경험과는 사뭇 달랐지만, 당시에 이는 너무 당연한 화풍이었다. 


#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의 개념이 생겨났다. 사물은 멀어지며 축소될 때 수학적 비례에 따라 줄어든다. 이때 사물이 줄어드는 각도대로 선을 그어보면 모든 선이 하나의 점, 곧 소실점에서 만난다. 소실점이 발명된 후 원근감을 배제한 평면성은 더는 당연하지 않았다. 소실점 덕분에 평면 위 공간을 실제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합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곧 사진같은 공간 묘사에 미술계는 압도됐다. 이후 소실점을 기반으로 원근법은 서양회화의 표준이 됐다.


새 회계제도(IFRS17)가 2년 내 현실화된다. 2023년 도입된다고 하지만 비교 재무제표 작성을 위해서 사실상 2022년부터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두차례가 연기된터라 시간을 더 벌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통하지 않는다. 


IFRS17은 원가로 평가해온 보험 부채를 시가, 즉 공정가치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 제도는 자산은 시가로, 부채는 원가로 평가해 온 터라 리스크 측정에 한계가 따랐다. '엇박자' 회계 기준은 그간 보험업의 현실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했고, 건전성 지표에도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IFRS 도입은 국내 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려는 조치다. 평가 절하되어 온 국내 기업 재무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도 기대된다.


보험사의 부담을 모르는 건 아니다. 자본 확충부터 포트폴리오 정비, 듀레이션 관리까지 어느 것 하나 손 놓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보험사들이 조달한 신규 자본만 어림잡아 10조원이 넘어선다. 최근에도 보험사의 자본 조달 소식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전문 인력을 추가로 확보하고 새 상품과 시스템 개발에 투입하는 부차적인 비용까지 고려하면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다. 보험업의 수면 아래 숨어있던 잠재적 리스크가 '비용'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그간 당연시 여겼던 보험 회계의 취약점이 더는 당연시 되지 않는다. 


IFRS17는 보험회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소실점'과 같다. 보험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보험산업의 질적 성장을 이끄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험업의 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 공식을 쓰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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