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늘' 벗어난 정의선의 과제
경영능력 시험대···산업패러다임 변화·리스크 관리 관건


[팍스넷뉴스 권준상 기자] 조선 3대 국왕 태종은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손에 쥔 인물이다. 왕권을 위협하는 친인척을 철저히 숙청하면서 권좌에 앉았다. 이런 탓에 태종은 후세 사람들의 머릿속에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 태종은 역사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조선시대를 넘어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을 만든 주역이다.  


1418년 태종은 세종에게 왕권을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세종에게 양위하면서도 군권은 쥐고 있었다. 사병을 혁파해 군사력을 확대한 태종은 이를 바탕으로 세종의 외척이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을 사전에 막는가하면 세종 즉위 초기 단행된 대마도 정벌을 주도했다. 세종이 다양한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곳간도 넉넉히 확보했다. 태종의 이런 노력과 세종의 뛰어난 자질이 모여 태평성대가 이뤄졌다. 


현대그룹은 2000년 정주영 초대회장의 후계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정몽구 회장은 10살 어린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왕위 경쟁을 벌였다. 패자(敗者)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에서 독립, 현대차그룹을 일구고 지난 20년간 지휘하며 굴지의 세계적 자동차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정의선 회장을 위해 일찌감치 경영지도에 나섰다. 그가 고령(1938년생)이라는 점이 빠질 수 없는 배경이지만, 자신이 숱한 역경을 딛고 일군 현대차그룹을 한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지도' 성격이 짙었다.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한 정의선 회장이 20년 만에 그룹의 최고자리까지 순탄하게 오를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그결과, 정의선 회장은 2002년 현대차 전무, 2003년 기아차 부사장, 2005년 기아차 사장, 2009년 현대차 부회장을 거쳐 2018년부터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을 맡는 등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현대차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방향키를 쥐었다. 현대차그룹은 단순히 우리나라 완성차업계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재계 2위라는 점에서 그가 맡은 회장직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회장직 이양은 시기의 문제일뿐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의선 회장이 부친이 닦아둔 토대에 훌륭한 건물을 지을 차례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높아진 위상만큼 다양한 환경변화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더이상 천편일률적으로 완성차만을 찍어내 팔아 수익화를 기대할수 없는 시대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차(EV), 수소차,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 등 미래 모빌리티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연스레 경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해졌다. 독자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에 경쟁사와의 협업이 요구되고 있고, 기존의 완성차업체뿐만 아니라 테슬라 등 새로운 경쟁대상이 우후죽순 파생되고 있다.


위기관리도 중요해졌다. 친환경차로 변화하는 시장에서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며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대차그룹이지만, 코나EV의 잇단 화재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경영, 현장경영을 내세우며 각종 위기를 타파해왔다. 정의선 회장은 책임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철학적인 관점의 경영스타일은 중요하지 않다. 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새로운 변화를 파악해 시장의 선도자가 되는 게 필요하다.


"선대회장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겠다" 


현대차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피력한 그의 다짐이 훗날 또다른 차기 회장의 본보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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