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 창립 60주년
불모지에서 초석을 다지다
'개척과 도전' 이종덕 창업주, 세아 성장 발판
세아그룹이 창업 60주년을 맞이했다. 창업주인 고(故) 이종덕 회장이 낡은 조관기 한 대를 가지고 제조업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세대를 거치며 세아는 국내 굴지의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기업들의 탄생과 소멸이 있었지만 세아는 하나로 똘똘 뭉쳐 미래를 향한 수레바퀴를 쉬지 않고 굴려왔다. 이제 세아는 백 년 기업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 앞에 다시 섰다. 

(사진=세아그룹 창업주 故 이종덕 명예회장)


[팍스넷뉴스 유범종 기자] 세아그룹 창업주인 해암(海巖) 이종덕 명예회장은 산업 불모지였던 국내에 강관산업을 꽃피운 개척자이자 성장의 주역이었다. 일생 동안 철강 외길만 걸어온 뚝심과 정직한 경영을 실천한 이 회장의 노력은 현재까지도 세아그룹의 근간이 되고 있다.


세아그룹은 1960년 부산 감만동에서 출범한 부산철관공업이 모태다. 당시 이종덕 회장은 '산업화를 이끌 초석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전 재산을 쏟아 기업을 세웠다. 한국전쟁 이후 복구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산업 육성은 국가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산철관공업은 정미소를 공장으로 개조해 창업 이듬해인 1961년 2월부터 첫 강관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에 단 한 대뿐이던 강관 설비(조관기)로는 시장수요를 온전히 충당할 수 없었다. 이 때부터 이종덕 회장은 새로운 설비 도입과 공장 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특히 이 회장이 열정을 가지고 추진한 서울공장과 포항공장 건설은 부산철관공업이 국내 1위 강관기업으로 도약하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진=1960년에 세워진 세아그룹의 모태 부산철관공업)


서울공장은 1960년대 후반 당시 국내 유일의 대규모 제철공장을 가지고 있던 대한제철 대지를 매입해 건설했다. 서울 고척동과 개봉동 일대 1만9000평 위에 세워진 서울공장은 2.5인치 소구경 강관부터 66인치 대구경 강관까지 생산할 수 있는 종합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서울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면서 이종덕 회장은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고 1975년 상호를 부산파이프로 변경했다. 부산파이프를 상호로 채택한 것은 비록 외래어지만 철관보다 알아듣기 쉽고 부르기 쉽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1973년)' 이후 석유개발 붐이 일어나자 이종덕 회장은 API강관(석유 및 천연가스 수송용 강관) 등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을 갈망했다. 때마침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설립되며 강관 소재인 열연코일 생산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욕구를 자극했다.


이러한 이종덕 회장의 의지는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이 회장은 1972년 포항 포스코 인근에 조성되는 철강연관단지에 부지 6만3000평을 매입하고 연간 24만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가진 포항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당시 투자금액만 120억원에 달했다. 이 회장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모래바람이 부는 허허벌판에서 새벽부터 현장을 지휘하며 열정을 쏟았다.


1978년 완공된 포항공장은 최신식 SRM(소형열간압연) 설비를 갖추고 강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API강관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부산파이프는 포항공장 건설로 고급 강관 수요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연간 3000만달러의 수입 대체효과를 거두었다.


이종덕 회장은 국내 강관 수출에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부산파이프가 강관 수출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부산파이프는 1972년 수출조직을 편제해 체계적인 수출기업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아울러 미주시장으로 수출 돌파구를 열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다양한 국가로 영역을 넓혀갔다.


그 결과 부산파이프는 1973년 수출 1000만달러에서 1979년 6000만달러를 돌파하며 불과 6년 만에 6배 이상의 수출 신장을 이뤄냈다. 당시 국내 수출 총액이 100억달러대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단일기업으로는 대단한 수치였다. 강관 수출의 새 지평을 연 부산파이프는 1982년까지 5년 연속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수출한국을 세우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종덕 회장은 창업 이후 20년 동안 역동적인 한국 경제와 궤를 함께하며 괄목한 사세 신장을 이뤄냈다. 창업 초기 연간 2000톤으로 시작한 생산량은 1979년 25만톤으로 120배 이상 성장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825만원에서 569억원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이종덕 회장은 1980년 장남인 이운형 회장에게 경영을 넘기며 창업주의 시대를 마감한다. 하지만 이종덕 회장은 개척과 도전의 정신으로 강관산업을 부흥시키며 국내 철강산업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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