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사업 키워드로 돌아본 이건희 33년
품질·디자인 앞세워 '세계 속 삼성' 도약…반도체·바이오 선제 투자


[팍스넷뉴스 류세나, 유범종, 조아라, 설동협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은 그룹 회장을 맡은 33년간 경영의 초석이 되는 다양한 사업들을 발굴하고 육성해왔다. 변화와 위기를 선제적으로 진단하고 대응한 그의 행보는 삼성은 물론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삼성의 성장을 이끈 핵심 지점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 품질경영: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은 삼성에 있어 대전환의 해였다. 이 회장은 그해 3월 '제2 창업 2기'를 선언하고, 새로운 경영이념을 선포했다. 핵심은 '품질혁신'이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그의 유명한 어록도 그 해 6월에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삼성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 외형적인 성장은 거듭하고 있었지만, 지금 변하지 않으면 2류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 회장은 당장 행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생산현장에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라인가동을 멈추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했다. 문제점을 해결한 후 재가동함으로써 불량률을 낮추기 위한 조치였다. 라인스톱제 도입으로 93년 그해 전자제품의 품목별 불량룰이 전년대비 30~50%포인트(p) 가량씩 줄어 들었다. 


또 매출이나 이익률 등 성장을 중심으로 평가하던 것에서 품질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사업별로 '업의 개념'에 맞는 품질 중심 전략을 짜고, 여기에 그룹 기여도 등을 적용해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성과중심의 경영관습에서 비롯된 조직 재부의 이기주의, 도덕불감증을 뜯어고치기 위한 방편이였다. 


임원진에도 변화를 주문했다. 주 4일을 사업장(공장)이나 매장, 협력사, 애프터서비스(A/S)센터 등 현장에서 지내게 했다. 이는 현장근무를 통해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해결도 신속하게 마무리 짓기 위한 조치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1994년 사상 첫 연매출 10조원(개별기준) 달성 신화를 썼다. 매출은 전년보다 41.2% 늘은 11조5181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2조6075억원)은 무려 99.2% 확대됐다. 순이익은 1546억원에서 9450억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이 회장의 품질경영 결단에 따른 성과였다. 


◆ 백색가전: 전량리콜 불사, 신뢰로 쌓은 세계 1위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품질경영'을 강조하면서 제품 경쟁력에 힘써 왔다. 결과적으로 고객 신뢰에 기반한 그의 품질 향상 노력 끝에 반도체 외에도 TV 등 가전 부문에서 삼성전자를 전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워낼 수 있었다.


2009년 삼성전자의 지펠 냉장고 폭발사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회장은 21만대 가량의 냉장고를 모두 리콜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삼성전자의 품질신뢰 회복을 당부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현재까지도 소비자들로부터 생활 가전 부문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계기가 됐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북미 지역 생활가전 소비자 만족도 평가에서 올 상반기 1위를 휩쓸었다. 특히 ▲프렌치도어형 ▲일반형 등 냉장고 부문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생활가전과 더불어 TV 역시 이 회장의 안목이 빛을 발한 사업이다. 그는 일본 체류 시절부터 영화를 즐겨봤고, 그만큼 TV화질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고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전자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쯤이다. 당시 그룹의 핵심인 삼성물산에 개발부를 만들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규사업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전자사업으로 모아졌다. 


삼성전자는 1969년 오리온 전자와 총판계약을 맺고 삼성의 상표를 붙인 TV 수상기 '프린스'를 시장에 발표했다. 1970년대 초 한일전기, 신한일전기의 스토브, 탁상형 선풍기, 냉장고 등을 시판했다. 1971년 자체적으로 제조사업을 맡을 생산법인 '삼성일렉트릭스'를 설립했다. 판매업만 담당하다 처음으로 생산시설을 갖게 된 삼성전자는 TV, 계산기 등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제품들의 자체 생산을 서둘렀다. 


이듬해 7월 20인치 흑백TV 대량생산시대를 열면서 가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TV시장이 브라운관에서 평면으로 바뀔 것을 직감하고 삼성전관을 통해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투자를 단행했다. 


TV 품질은 결국 '화질'이라는 그의 경영 철학이 담겼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 결과 삼성은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도 13년 연속 세계 TV시장 1위다. 2006년 이후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준적이 없는 셈이다.


◆ 디자인: 조약돌폰에서 비스포크로 연결된 디자인 경영


2012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조약돌폰'.


디자인 경영도 삼성을 글로벌 경쟁에서 한 단계 도약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이 회장은 일찍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임직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디자인 측면에서의 진일보를 요구했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에도 "앞으론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며 "성능이고 질이고, 이젠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질텐데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그해 신년사에서 "올해를 그룹 전 제품에 대한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우리의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나가도록 하자"고 선포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경영의 최후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삼성은 1993년 우수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2년 뒤엔 디자인학교 삼성디자인스쿨을 설립했다. 또 1997년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에 디자인부문을 추가했다. 


마침내 2002년 4월 혁신적인 디자인의 휴대폰 'SGH-T100'이 출시됐다. 이 회장은 이 제품의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폈고, 실제 손에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한 것도 바로 이 회장이었다. 조약돌 형태의 이 휴대폰은 '이건희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출시와 함께 큰 화제가 됐고, 단일모델 최초의 1000만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건희 회장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이건희 회장은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삼성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은 1.5류입니다.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인데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후 삼성의 디자인은 다시 한번 벽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얻는다. 밀라노 회의 이듬해인 2006년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그 해에만 300만대가 판매되며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흔들어놨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디자인 경영' 철학이 현재의 삼성전자의 개인별 맞춤형 디자인을 제공하는 '비스포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 반도체: 불모지에 '반도체 DNA' 심은 선구자  



"반도체에 진출할 당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high-tech)산업 밖에 없다고 여겨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4년 반도체 3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이 회장은 불모지였던 국내에 '반도체 DNA'를 심은 장본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74년 삼성이 IT산업의 모태인 반도체사업 진출을 선언했을 때 아무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이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특히 이 회장이 당시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 인수를 추진할 때 기업 안팎에서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날 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그 때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 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회장은 "언제까지 선진국(미국, 일본)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나?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 내 사재를 보태겠다"라는 어록까지 남기며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이 회장의 강한 의지에 화답하듯 삼성은 1982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분야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 강국이었던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64M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것에 이어 생산까지 대폭 늘리며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후 삼성은 D램뿐만 아니라 플래시메모리, 시스템메모리 분야에서도 투자와 개발을 이어가며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 삼성은 반도체 분야에서 '초격차 전략'을 통해 시장을 이끌어가는 기업이 됐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 매출은 반도체 성공 신화를 기반으로 2018년 386조원을 훌쩍 넘기며 39배 가량 늘어났다. 세계가 놀란 이러한 기적의 중심에는 삼성을 단지 국내 일류가 아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한 이건희 회장의 꿈과 실행력이 밑거름이 됐다. 


◆ 바이오: 제2의 반도체 뿌리 개척


"바이오제약은 삼성그룹의 미래 사업이다. 바이오제약 사업이야말로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 추진하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2020년까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발광다이오드)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5대 신사업에 약 23조3000억원 투자 계획을 알리는 자리였다. 이건희 회장은 신사업으로 매출 50조원, 고용 4만5000명을 창출하겠다고도 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바이오 사업은 추진 3년째를 맞고 있었다. 바이오 제약 합작사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는 한편, 의약품 생산 공정 설립으로 해외 제약사의 물량을 수주하며 상당한 결과물을 보던 때다. 


이건희 회장은 바이오제약 사업이 삼성의 강점인 전자사업과 전혀 다르다면서도, 사업간 시너지를 발휘할 것을 확신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삼성의료원, 바이오제약, 삼성전자의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기기 사업 등 의료관련 사업 융복합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이오제약 분야의 성공은 이건희 회장을 새롭게 평가하는 또 다른 지표가 됐다. 동물세포 기반의 항체의약품을 전문 생산하는 위탁생산(CMS) 업체인 삼성바이오직스는 상장 4년 만에 시가총액 42조809억원으로 시총 6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7015억원, 영업이익 917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전년 대비 각각 31%, 65% 늘었다. 올해 3분기에는 매출은 2746억원, 영업이익 56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6%, 139% 증가했다. 


삼성은 바이오분야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8월 하반기 4공장을 발표하며 알츠하이머 시장 개화에 대한 우선 대응 방침을 알리며 사업 확대를 예고했다. 4공장은 오는 2022년 준공 및 2022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대 매출은 약 1조원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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