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재석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유동성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영구채는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긴 채권으로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식된다. 채권업계에서는 잇단 영구채 발행을 두고 내년 신용평가사 정기평가에 앞서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행보로 풀이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 CJ CGV(A+)는 사모를 통해 800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했다. 조달 금리는 연 4.55%로 결정됐다. 영화 산업은 올해 코로나19 여파를 가장 크게 받은 업종이다. 지난 상반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영화 관람객이 급감하며 CJ CGV는 올해 상반기 202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도 29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기준 652%였던 부채비율은 올해 6월 1135%까지 급등했다.
영구채로 300억원을 조달한 풀무원(BBB+)도 비슷한 상황이다. 풀무원은 지난 10월 말 희망금리밴드를 4.60~4.90%로 비교적 높게 제시하며 투자심리 유치에 성공했다. 풀무원도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으며 부채비율이 크게 늘었다. 지난 2018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173%였던 부채비율은 2019년 220.6%, 올해 6월 말에는 230.1%까지 늘어났다.
영구채는 그간 자본비율 제재가 강한 은행권에서 자본을 확충할 때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업종이 늘어나며 일반 기업들까지 채무비율을 줄이기 위해 영구채 발행에 나서는 분위기다. 채권이지만 회사가 만기를 정할 수 있는 만큼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를 늘리지 않으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다만 부채 부담의 감소에도 금리가 그만큼 더 비싸진다는 점에서 무조건 영구채 발행을 선호하긴 어렵다. 현대오일뱅크(AA-)는 지난 10월 말 200억원 규모 영구채를 추가 발행했다. 올해만 세 번째 영구채 발행으로 총 규모는 4300억원에 달한다. 200억원 영구채는 표면이율 3.65%에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AA-' 등급 3년물(1.489%)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금액이다.
최근 발행되는 영구채는 3~5년 후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 여부를 설정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단기물 성격을 띠고 있다. CJ CGV는 발행일 기준 1년 이후부터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영구채 금리는 매년 일정 수준 올라간다. 풀무원 또한 발행일 이후 3년이 지나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
채권업계에서는 잇따른 영구채 발행을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익명의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일반기업들이 영구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당장 내년에 있을 신용평가사의 정기평정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며 "콜옵션으로 사실상 만기가 정해진 영구채를 발행하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시간을 벌어두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영구채는 조달 금리가 비싸고, 상환순위도 후순위로 밀리는 등 사실상 단점이 더 많기 때문에 그만큼 조달시장이 어렵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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