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권일운 기자] 이륜차 제조사 KR모터스가 최근 시장 상황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불리한 조건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최근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제기돼 주가가 큰 폭으로 올라 그나마 대규모 자금을 CB 발행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는 분위기다.

KR모터스는 오는 23일 시너지IB투자의 펀드 '시너지 그린뉴딜 제1호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을 대상으로 350억원 규모의 51회차 CB를 발행키로 했다. CB의 만기는 4년이며 주식 전환은 발행 1년 뒤부터 만기 1개월 전까지 가능하다.

이번에 발행하는 KR모터스 CB의 금리는 표면 3%, 만기 5%로 설정됐다. 표면 금리에 해당하는 이자는 3개월 마다 지급해야 한다.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표면금리와 만기금리 모두 0%인 메자닌(Mezzanine)을 발행하는 것이 '대세'가 된 최근 트렌드와는 괴리가 있다. 이는 그만큼 금융투자(IB) 업계와 잠재 투자자들이 KR모터스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옵션 또한 발행사와 발행사 최대주주 측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설정돼 있다. 리픽싱은 통상 초기 전환가액의 70% 가량을 한도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KR모터스 51회차 CB는 액면가까지 가능하다.

KR모터스 51회차 CB는 발행 당시 전환가 1332원 기준으로는 2627만6276주의 신주를 교부받을 수 있다. 하지만 리픽싱을 최대치까지 실시할 경우 확보 가능한 주식 수가 7000만주까지 늘어난다. 시너지IB투자가 최저 전환가액을 기준으로 51회차 CB를 전량 전환할 경우 현 최대주주인 오세영 회장(특수관계인 포함 4709만6325주 보유)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한다는 얘기다.

최대주주의 지배력 약화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매도청구권(콜 옵션)이 부여돼 있긴 하다. 전체 CB의 30%인 122억5000만원 어치를 KR모터스 또는 KR모터스가 지정하는 제3자가 매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최근 경영권 매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급등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꽤 오랫동안 600~700원 사이를 횡보했고,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1000원 아래였던 KR모터스 주가는 최근 들어 1500원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랐다. 지난 4일 장중에는 163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최대주주가 바뀌고, 새로운 최대주주가 신규 자금을 공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서다.

덕분에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전환가액을 1332원으로 책정될 수 있었다. 전환가액을 산출하는 기준 주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발행사 입장에서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발행사 주주들은 지분 희석에 대한 우려를 줄일 수 있다.

KR모터스는 CB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채무 변제에 쓰기로 했다. 일단 유동화 채무인 스카이파이낸싱제이차를 필두로 한 금융권 차입금 250억원을 갚고, 내담상사 등 관계사로부터 일으킨 차입금도 25억원을 일부 갚을 예정이다. 

KR모터스의 CB발행은 당초 경영권 지분을 매각한 이후 새로운 최대주주 주도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오세영 회장 측은 자신이 보유한 KR모터스 지분을 매각함과 동시에 매매 상대방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토록 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넘길 방침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 최대주주가 재무적투자자(FI)를 동원해 메자닌 형태로 신규 자금을 수혈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했다. M&A가 실질적으로는 KR모터스 채권자들의 의지로 추진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