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이 '빠뜨린 것'
해결책보단 사업주 징계에 치우쳐···사업주 경영의지 약화

[팍스넷뉴스 이경탑 편집국장]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대기업 그룹홍보실에서 맞은 첫 번째 초겨울. 직속 팀장이 술 접대 이후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택시를 잡기 위해 중앙분리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취중에 넘어진 것이다. 이를 발견 못한 차량 두 대가 연이어 고인의 가슴 위를 타고 넘었다. 장소는 청계고가와 청계천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가로등이 있었지만 밤12시를 넘어 어둑어둑했다.


홍보실장 주도 아래 장례는 유족 뜻에 따라 숙연하게 진행됐다. 형수님(미망인)이 가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계열사 백화점 내 유명 아이스크림 점포를 회사가 얻어주었다. 퇴근 이후 일어난 사고지만 업무 중 사고로 처리됐다. 산업재해 등 당시 법적 테두리 이상의 거액의 위로금도 함께 전했다. 한동안 제삿날이면 몇몇 직원들이 유족을 찾아간 기억도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책임자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보면서 30여년전 사고를 떠올리게 된다.


거대 여당과 노동계 주도로 일방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에 경제계가 발끈하고 있다. 당장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기업인들의 볼멘소리까지 들린다. 일선 산업 현장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사업주에 대한 책임 등 처벌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안명만 봐도 납득할 수 있다.


"사업한 지 40여년입니다. IMF와 키코 사태로 어려움이 컸지만 그 때는 낙담하지 않고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은 이겨낼 자신이 없습니다. 사업을 계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40년 이상 밤잠 줄이며 일해 왔는데 일흔이 넘어 범죄자로 감옥에서 끝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이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롯한 21대 국회의원에게 이런 내용의 공개서한을 법안 통과 직후 보냈다. 대통령표창을 두 번씩이나 받은 원로 기업인이 오죽하면 울분을 삼키지 못하고 있을까. 먹먹하다.


그는 현장에서 쌓았던 오랜 경험에 근거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사전적 예방조치('사업발주시 안전관리 비용 별도 산정')와 ▲산재발생 이후 유가족 보호를 위한 사후적보상체계('안전시공면허 신설')에 대한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입법 만능주의에 치우친 여당과 정부가 한 글자 한 글자 되짚어봐야 할 내용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근로자 5명 미만 개인사업장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근로자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 또는 원청업체 책임자 개인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에게는 50억원 이하 벌금을 물게 한다는 처벌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회 초년병 때 겪었던 충격적 사건을 서두에서 꺼낸 건 산업재해에 대한 예방과 원만한 사후 처리방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당시 고인의 사고와 관련해 유족의 심기를 건드릴 법한 말을 그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장례절차와 유가족의 생계 등 눈앞에 놓인 일에만 집중했다. '내 일 또는 내 가족의 일'이란 생각에 한마음으로 큰일을 치뤘다. 사측의 배려가 고마웠다. 회사를 일컬어 '법인'(法人)이란 인격체 명사를 붙이는 이유에 대해 새삼 깨닫기도 했다. 동방예의지국의 동병상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화두로 선포한 '통합'은 이처럼 건강한 공동체 정신에 기초할 때 실현 가능하다.


시골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문래동에서 줄곧 철공 일을 해 온 친구가 긴 한숨을 토한다. 우직한 성품이 사장 눈에 들어 6년 전 공장을 물려받았다. 현재 직원 대여섯을 데리고 있다. 손톱 밑 기름때를 훈장처럼 여겨온 그가 그 일을 그만둘까 망설이고 있다.


산업재해는 안타깝게도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원인이 근로자의 과실일 수도 있고, 사측의 시스템 미비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를 최소화하고 재해발생시 사측과 유족이 원만한 합의를 통해 충분한 보상 등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현 법안은 해결책에 관심두기보단 사업주 징계에만 치우쳐 있다. 


자칫 사업주의 건전한 경영 의지를 꺽어 고령화로 점점 취약해지고 있는 우리 국가 경쟁력만 약화시킬 수 있다. 중대재해법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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