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혜인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과 배터리 분쟁을 벌이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이 "LG의 요구는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게 만든다"며 LG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26일 오전 서울 종로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제14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총은 미국 출장 중인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를 대신해 이명영 SK이노베이션 이사가 의장을 맡았다. 

이명영 이사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 문제로 주주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죄송한 말씀 드린다"며 "ITC가 문서 관리 미흡을 이유로 사건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사실 관계는 판단하지 않은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화사고가 나지 않았으며, 안정성과 품질 측면에서 고객사들로부터 차별적 경쟁력을 인정받아 왔다"며 "앞으로 남은 법적 절차에서 주주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LG의 합의금 요구에 대해서는 강하게 지적했다. 이 이사는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경쟁사가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수용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경영 강화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이 이사는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을 향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정체성, 사업 포트폴리오, 자산을 친환경 중심으로 재정비해, 새로운(New) SK이노베이션을 만들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주총에서는 김정관 사외이사 선임, 최우석 사외이사 선임(감사위원회 위원) 안건이 통과됐다.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김정관 사외이사 후보는 에너지·산업 분야 전문가로, 글로벌 성과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최우석 사외이사 후보는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자격을 가진 회계학 교수이자 상법상 회계전문가로서, 2018년부터 SK이노베이션의 대표 감사위원으로 직무수행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외 ▲재무제표 승인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승인 ▲이사 보수한도 승인(전년 대비 15억 감소한 105억) 등의 안건 역시 원안대로 통과했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2019년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지난 2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을 받아 들여,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셀, 모듈, 팩 관련 부품 및 소재의 미국 내 수입금지 10년을 명령했다. 한편 미국 대통령은 ITC 결정에 대해 60일(오는 4월11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SK이노베이션에도 한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지낸 샐리 예이츠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며 "예이츠 전 차관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 고문을 맡고 있는 인물"이라고 지난 24일 밝혔다.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 역시 이달 초 바이든 대통령에게 ITC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금지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