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혜인 기자]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의장이 사외이사의 본래의 역할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경쟁사와 벌인 소송에서 패소한 아쉬움에 회사를 대표해 미국 현지 행정부, 정치권 인사와 만남을 가지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31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김종훈 의장은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등 여러 관계자를 만나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수입금지 명령을 뒤집지 않으면 (조지아주는) 수조원대의 투자 유치 기회를 잃을 것"이라며 "ITC 판결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다른 지역에 공장을 다시 세우는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의 이 같은 행보는 ITC 소송에서 패소한 데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지난 10일 SK이노베이션 감사위원회 입장을 통해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내부적으로 글로벌 소송 대응 체계를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을 전했다.
김 의장은 2017년에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이사회의 독립성,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인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김 의장은 과거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의 각종 협상을 이끄는 역할을 맡아 왔다.
일각에서는 김 의장이 미국 현지에서 보인 행보가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의 본래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경영진의 경영 활동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경영진의 직무집행이 적법한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의 본연의 역할인데, 김 의장이 이를 넘어 직접 현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며 대관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경쟁사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과 2019년부터 배터리 소송을 벌여 왔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ITC에 소송을 제기했으며, 지난 2월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셀, 모듈, 팩 관련 부품 및 소재의 미국 내 수입금지 10년을 명령했다. 한편 미국 대통령은 ITC 결정에 대해 60일(오는 4월11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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