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책임 회피'라는 모럴해저드
이 기사는 2021년 04월 29일 10시 2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양도웅 기자] 다른 사람의 말까지 듣기엔 너무 바쁜 세상이다. 설령 그 사람의 목소리가 크거나 그럴듯하더라도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하면 그만이다. 지난 26일 오전 11시30분.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금융회사들이 설계하고 '불완전판매'한 사모펀드를 샀다가, 환매중단으로 수억원씩의 손실을 본 투자자 10여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흔하디흔한 마이크마저도 사용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마저도 외면한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일상의 바쁜 시간을 쪼개 금감원 앞에 현수막을 치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금감원의 수개월째 지속된 외면 때문이었다. "곧 인사 시즌이라 담당자가 바뀔 예정입니다. 제가 지금 그 이야기를 듣더라도 해결은 어려울 듯합니다." 투자자들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피드백 전부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이 대답을 회피하는 건 바쁘기 때문일 터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수습보다 중대한 사안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그들의 입장에서). 은행과 은행지주들의 자본적정성을 상시적으로 검사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는 볼멘소리도 들려올 정도다. 비꼬는 게 아니다. 국내 모든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자 역할을 해야 하는 금감원 입장에선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수습에만 매달릴 순 없는 노릇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열불 나는 상황이지만.


사모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 사모펀드를 설계하고 운용한 자산운용사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이 날아오는 투자자들의 해명 요구와 배상 청구에 일일이 대응하고 있다간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다. 왜 그 펀드에서만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했는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어떻게든 귀를 막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처럼 외면하는 게 상책이라고 결론지었을 터다. 금감원(언론)도 딱히 별다른 말이 없고.   



'책임 회피'는 모럴해저드의 다른 이름이다. <출처=flickr>


그리고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9년부터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보도하고 취재하는 데 언론도 질려버렸다. 지난 26일 금감원 앞에서 시위하는 투자자들을 취재한 기자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실제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언론은 그보다 더 적었다. 이튿날 투자자 1명은 전날 금감원을 찾은 기자들을 초대해 단톡방을 열고 청와대에 청원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현재까지 이를 보도한 매체는 없다. 


이렇게 금감원과 금융회사, 언론이 모두 뒷짐 지고 있는 건 같은 말(일)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길 원치 않아서다.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딱히 세상을 구할 만한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 건 아니다.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데서 오는 바로 이 지독한 지겨움 때문이다(여기서 만들어진 게 '모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희한한 변명이다). 


하지만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고 싶지 않다면 오히려 지금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라는 '모럴해저드'는 우리 금융산업의 구조적 문제이고, 이 구조적 문제는 바로 의무와 책임이 있는 이들의 '책임 회피'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이 상황이 지겨워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한다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없는 유토피아에 도착하는 건 아니다. 수조원의 사모펀드가 환매중단된 사태에서 그 누구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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