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류세나 기자] "쿠팡처럼 한국계 외국인이 국내에서 기업집단을 형성한 사례가 이전에 없었던 데다가 국내에 친족이 있었던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이런 경우를 어떻게 할지 연구용역 등을 통해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도를 운영해 나가겠다."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가 낡은 법 논란에 휩싸인 기업 동일인(총수)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손질을 예고했다. 실질적 총수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범수 쿠팡 이사회 의장이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하면서, 규제당국인 공정위 또한 동일인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29일 진행한 '2021년도 대기업집단 지정결과' 브리핑에서 "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한 쿠팡은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미국법인을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지만, 그간 외국계 기업집단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한 점, 현행 제도의 미비점, 계열회사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를 동일인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부위원장은 현재 지정한 동일인이 과거처럼 장기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환경 변화에 따라 실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겠다고 전했다. 

그는 "동일인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는 매년 5월1일에 진행하는 것으로 올해 현대차와 효성의 동일인이 변경된 것처럼 앞으로는 동일인도 매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칠 것"이라며 "동일인 변경 사유가 발생하면 변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후 법과 시행령 개정 작업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간 경제계 안팎에서는 동일인 지정을 두고 80년대식 사고에 갇힌 낡은 법이란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공정거래법상 명기된 동일인 지정제는 대기업그룹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1986년에 제정됐다. 사익편취 금지, 출자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의 규제가 골자다. 특히 총수로 지정하면 매년 제출하는 지정자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배우자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긴다.

이런 가운데 김범석 의장이 미국 국적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피하면서 동일인 지정제도가 이번엔 검은머리 외국인에 대한 특혜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간 공정위는 해외자본이 들어간 기업은 이미 해당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고 한국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에쓰-오일, 한국GM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 김 부위원장은 "쿠팡의 경우 김범석 의장 개인이 갖고 있는 국내회사나 친족이 갖고 있는 국내법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익편취 문제에 있어선 동일인으로 김범석 의장을 지정하든 법인을 지정하든 동일하다"면서도 "시행령 상에 '사실상 지배'에 대한 판단기준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 현재보다 명확하고 구체화한 기준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경우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여러가지 공시 의무들도 부과하는데, 이러한 국내법이 외국인에게 재대로 집행할 수 있을 지의 권한 문제는 만만치 않은 이슈"라며 "특히 개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경우, 친족도 동일인 관련자에 포함되는데 외국인의 경우 국내에 친족이 있는 지에 관한 문제, 외국인들에게 관련 자료를 받을 수 있을지, 법 집행의 실효성 등을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