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현기 기자] 1959년 설립된 안국약품은 서울약품 상무이던 어준선 현 회장이 1969년 1억원에 인수한 뒤 50년 넘게 어 회장 중심의 오너가 지배 아래 운영되고 있다. 안국약품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나 지난 2000년 6월 코스닥 시장을 통해 상장하는 등 기업공개(IPO)는 비교적 늦게 했다. 이는 지금까지 오너가가 50%에 육박하는 지분율을 기록, 안정적인 지배력을 구축하는 이유가 됐다. 안국약품은 IPO 뒤 20여년간 6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 차례(2013년) 진행한 것 빼고는 큰 액수의 자본 조달을 하지 않았다.
안국약품은 국내 여러 제약사들 오너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승계 문제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중이다. 어 회장의 장남 어진 부회장이 안국약품을 물려받고, 차남 어광 안국건강 대표이사는 안국건강(비상장) 경영을 통한 계열 분리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2017년 이후 오너가 승계 작업이 멈춘 모습이어서 언제 지분 및 경영권의 물려주기가 마무리되는가는 관건으로 남아 있다. 제약계에선 2018~2019년 터진 안국약품의 불법 임상 및 리베이트 파문으로 어수선한 회사 내부가 정리돼야 승계도 재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장남 어진 '밀어주기'
안국약품의 승계 출발점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준선 회장이 3수 끝에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함에 따라 그가 기업 경영에만 전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남인 어진 부회장이 당시 만 34세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2세 경영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특히 어진 부회장은 안국약품 상장 해인 지난 2000년부터 장내매수를 꾸준하게 진행, 최대주주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IPO 직전인 1999년만 해도 어 부회장의 지분율은 1.3%에 불과했으나 이듬해부턴 달랐다. 어진 부회장은 2004년까지 약 4년간 총 73차례의 장내 매수를 통해 자신의 지분율을 17.0%까지 확 끌어올렸다. 안국약품도 어진 부회장이 한창 장내매수를 해나가던 2003년 12월19일 그에게 3억원(연이율 11%)을 빌려주고, 같은 해 상장 이후 처음으로 주당 100원의 배당(시가배당률 5.2%)을 통해 1억8700만원의 배당금을 쥐어주는 등 사실상 '승계 실탄' 지원에 나섰다.
어진 부회장은 주춤했던 장내매수를 2012년 5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41차례 다시 진행하며 지분율 20%를 돌파했다. 장내매수와 함께 수증과 유상증자 참여 등이 겹치면서 지금의 지분율 22.68%를 이뤘다. 증여를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20.44%까지 낮춘 아버지를 제치고 지난 2016년부터 안국약품 최대주주 자리를 꿰찼다.
◆ 차남 어광 '홀로서기'
반면 차남인 어광 대표는 안국약품의 IPO 이후 형과의 '한지붕 경영'이 아닌, 안국건강을 선택해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안국건강은 지난 2002년 설립됐으며 건강기능식품 제조 및 판매에 역점을 두면서 의약품 위주인 안국약품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어광 대표는 지난해 말 기준 안국건강 총 주식의 54.44%(12만2488주)를 기록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안국약품이 지분율 29.98%로 어광 대표의 뒤를 이어 2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2014년 말 자회사에서 제외, 지금은 관계사로 분류하고 있다. 안국건강이 안국약품 영향력에서 벗어나 최대주주인 어광 대표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광 대표의 지난해 말 기준 안국약품 지분율은 3.74%에 불과해 22.68%인 형을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안국건강의 홀로서기에 힘을 실어준다. 어광 대표도 2000~2004년 형처럼 안국약품 장내매수를 하긴 했으나 지분율을 4년간 1%에서 2.5%로 올리는 소량 매입에 그쳤다. 안국약품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어광 대표의 경우, 2002년 안국건강이 세워지면서 자신의 자금이나 경영 능력을 안국약품보다는 안국건강 영향력 넓히기에 활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 불법 임상 의혹에 성장 멈추고, 승계도 멈췄다?
안국약품은 20년간의 장기 프로젝트로 2세 승계 및 장·차남 교통정리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 아버지 어준선 회장의 정계 입문이 승계를 도운 셈이 됐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편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2016년 이후 지난 5년간은 어준선 회장 20.44%, 어진 부회장 22.68%, 어광 대표 3.74%로 지분율이 고정되면서 1·2세간 승계가 긴 시간 중단된 상태이기도 하다.
제약업계에선 향후 안국약품 오너가의 2세 승계 완성 변수로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지난 2018~2019년 터진 안국약품의 불법 임상 및 리베이트 파문이다. 특히 어진 부회장이 의약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허가받은 대상자가 아닌 자사 직원에게 임상시험을 한 혐의로 지난 2019년 9월 구속됐다가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는 등 회사 전체가 최대 수난에 직면한 상태다. 어진 부회장은 이에 앞서 2019년 7월엔 의사들에 대한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적도 있다.
최종 선고 결과에 따라 어진 부회장의 거취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남은 승계를 당분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회사 안팎에선 리베이트 파문 뒤 지난해 적자전환하는 등 실적이 추락하고 있어 이 것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국약품 관계자는 "어진 부회장의 불법 임상 및 리베이트 혐의와 관련된 재판은 현재 1심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하나는 안국건강의 IPO 여부다. 안국건강은 지난해 자산규모 274억원, 매출액 538억원, 영업이익 42억원을 기록하는 등 괜찮은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성장과 맞물려 안국건강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고 기업가치를 늘리면 차남의 독자노선도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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