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픽싱 악용의 나비효과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2일 07시 5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권일운 기자] 리픽싱이 액면가까지 가능한 메자닌이 종종 나온다. 예컨대 최초 전환가액이 1만원인데, 액면가인 500원까지 전환가를 낮추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주가가 20분의 1토막이 나더라도 메자닌 투자자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액면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초 전환가액의 절반 내지는 그 이하로 리픽싱을 단행하는 조건으로 발행되는 메자닌이 적지 않다.


이런 메자닌은 주로 기존 주주와 무관한 제 3자를 대상으로 발행된다. 이들 메자닌 투자자들은 채권자의 지위를 누리면서도 주가가 오르게 되면 그에 비례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주가가 떨어지면 그에 비례해 리픽싱을 실행하면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리픽싱은 최초 전환가의 70~80% 정도까지만 가능토록 하는 것이 메자닌 시장의 암묵적인 룰이다. 리픽싱 옵션을 제공하지 않는 발행사들은 우량한 발행사로 간주돼 투자자들이 몰리는 사례도 연출된다. 반면 그보다 낮은 리픽싱 한도를 제시한 발행사는 잠재적 투자자들로 하여금 실적이나 재무구조, 지배구조 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리픽싱 옵션 자체는 메자닌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를 내게 될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에는 리픽싱 옵션을 첨부한 메자닌을 발행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자금 조달로 기업의 실적과 주가가 '나이키 커브'를 그리게 되면, 리스크를 감내하고 베팅을 단행한 투자자들은 큰 수익을 내게 된다.



하지만 액면가 리픽싱처럼 지나친 수준의 리픽싱 옵션이 첨부된 메자닌에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싼 값에 상장사를 인수·합병(M&A) 하기 위해 액면가 리픽싱이 가능한 메자닌을 사들일 수 있다. 또한 파격적인 수준의 리픽싱이 가능한 제 3자에게 발행한 뒤 최대주주가 일부를 되사면 적은 돈으로 지배력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금융 당국도 일부 발행사들의 리픽싱 조건이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이라는 점을 인지한 듯 하다. 그래서인지 주가 하락뿐 아니라 상승분도 반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 리픽싱 관련 제도를 수립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렇게 되면 리픽싱을 악용해 저가에 지분을 늘리는 행위를 어느 정도는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픽싱은 결국 금융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이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투자자 보호'를 위해 탄생한 기법이다. 그랬던 리픽싱이 갖가지 문제점을 야기시키면서 결국은 리픽싱의 존재 가치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만약 지금 거론되는 것처럼 주가 상승과 하락분을 모두 리픽싱에 반영할 경우 메자닌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은 전보다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소수의 미꾸라지가 강물을 흐린다는 속담은 메자닌 시장에서도 어김 없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여파는 선의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온 메자닌 투자자들이 맞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과연 상방과 하방을 모두 열어 둔 리픽싱이 가능하게 된다면 투자자들이 한계 기업에 선뜻 자금을 지원하려 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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