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장 안돼' 철퇴 든 中 정부
블랙록 "미·중 기술 탈동조화 심각하게 심화"

[팍스넷뉴스 신진섭 기자] 빅테크 기업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냉전(Tech Cold War)'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지정학적 위험이 투자의 중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연일 철퇴를 내리고 있다. 표면적 이유는 국가안보다. 미국 증시 상장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자국민의 개인정보 노출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자본시장의 관점으로 보면 규제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기술 기업들이 공산당에게 덜미를 잡힌 형국이다. 


7일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차량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의 주가는 거래일 전일 대비 약 20% 하락해 12.49달러를 기록했다. 공모가인 14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난달 30일 디디추싱은 총 2.88억주의 미국주식예탁증권(ADS)를 발행해 공모가 밴드 최상단 금액으로 뉴욕 증시에(NYSE) 상장했다. 조달금액은 44억달러(약 5조원)에 달한다.


상장 직후인 지난 2일 중국의 사이버 감독기구인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디디추싱이 심각한 사이버 안보 위반이 의심된다며 조사를 공표했고 어플리케이션(앱) 신규 이용자 가입을 막았다. 4일에는 자국 내 앱스토어에서 디디추싱 앱을 삭제 조치했다. 디디추싱은 16개 국가에 진출해 있지만 매출은 중국에 집중돼 있다. 디디추싱의 거래액 87%가 중국 내 차량 공유 사업에서 발생한다.



연이어 5일 중국정부는 윈만만, 훠처방, BOSS즈핀 등 중국 기술기업도 사이버 안보 조사 대상에 올린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미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다. 중국정부가 미국 자본의 중국 기술기업 개입을 차단하려는 속내를 지닌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11월 앤트그룹의 상장 좌절이 중국 기업들의 미국 자본 시장 진출의 도화선이 됐다고 분석했다. 알리바바 핀테크 회사 앤트그룹은 당시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해 300억달러(약 34조)를 조달하는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제지 당했다. 같은 해 10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전당포에 비유하며 후진적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분개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앤트그룹의 상장불허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 리스크를 감지한 중국 기술기업들은 자본 조달을 위해 미 증시에 몰려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중국 기술기업이 미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150억달러(약17조원)를 넘어선다. 


기술 냉전의 기류는 홍콩에서도 목격된다. 애플, 구글 아마존, 트위터, 페이스북 등 기업들이 회원사로 속한 아시아 인터넷 연합(ASIA INTERNET COALITION, 이하 AIC)은 지난달 25일 홍콩 정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개인정보법 개정안을 강행할 시 홍콩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AIC에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도 포함돼 있다.


홍콩정부는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로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 인사들의 신상털기(doxxing)가 발생하고 있다며 개인정보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에는 정부 요청 시 인터넷 사업자들이 신상털기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게시물 작성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AIC는 개정안이 명시한 신상털기 범죄의 구성요건이 모호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개정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중국 정부의 검열정책에 미국 기술기업들이 반기를 든 셈이다.


지난 6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탈동조화(디커플링)이 심화되며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블랙록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 탈동조화는 규모와 범위면에서 심각하게 심화(accelerates)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미국) 공급망의 취약성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지속적으로 상호의존성을 경감해 세계를 분절로 몰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랙록은 중국이 올해부터 14번째 5개년 계획을 통해 기술 자립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고, 이에 맞서 미국은 기술 육성 정책을 입법하고 유럽과의 기술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블랙록이 공개한 '지정학적 위험 상황판(Geopolitical risk dashboard) 보고서 중 일부. 글로벌 기술 탈동조화의 발생 가능성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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