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 M&A
조창걸 명예회장의 51년 성공신화
1970년 한샘 설립 후 1994년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이 기사는 2021년 07월 14일 16시 3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엄주연 기자] 한샘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내린 결단은 결국 매각이었다. 조 명예회장은 일찍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전문경영인과 역할분담에 나서면서 발빠른 시장대응에 나섰으나, 후계구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번 매각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그가 쌓아 올린 성공신화도 51년 만에 새 주인을 맞이할 전망이다. 


조 명예회장의 삶은 한샘 역사와 함께했다. 193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서울대 건축공학과 국제디자인대학원을 졸업한 후 건축사로 일하다가 1970년 한샘을 세웠다. 비닐하우스에 사업장을 차린 그는 한국 부엌의 아궁이를 바꿔 주부들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목표 아래 과거 쪼그려 앉아 일하던 형태에서 서서 일할 수 있는 입식 부엌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의 혁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국내에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한샘의 주방 가구가 큰 인기를 끌자 다시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1990년대 들어 한샘을 부엌가구 전문에서 종합 인테리어기업으로 확대하며 한 단계 도약을 이끌었다. 한샘이 종합 가구 회사로 자리 잡으면서 1994년 조 명예회장은 최양하 전 회장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업에서 물러난 조 명예회장은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싱크탱크 설립을 본격화한다. 31살부터 한국의 미래를 그려내는 '한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를 구상한 그는 2012년 사재를 털어 공익법인 '태재(泰齋)재단(옛 한샘드뷰연구재단)'을 세웠고, 2015년 3월에는 한샘 주식 절반인 260만주를 태재(泰齋)재단에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에는 공익재단 '여시재(시대와 함께하는 집)'을 출범했다. 여시재는 한샘드뷰연구재단의 출연으로 탄생한 또 다른 싱크탱크다.


성공신화를 이룬 그에게도 늘 고민이 존재했다. 조 명예회장은 슬하에 1남 3녀를 뒀지만 지난 2012년 조 명예회장의 외아들이 사망하면서 후계구도가 불확실해졌다. 남은 세 자매는 한샘 지분을 각각 1.32%, 0.88%, 0.72% 보유하고 있으나 회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손자가 있지만 나이가 아직 어려 회사 경영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조 명예회장은 예전부터 적임자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지론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속사정 때문에 한샘의 후계구도는 안개 속이었다. 이번에 한샘이 매물로 나온 것도 올해 82세로 고령인 조 명예회장이 복잡한 승계 문제를 마무리짓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선 지배적이다. 지난해 한샘이펙스 지분을 최양하 전 회장에게 넘긴 것도 매각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한샘은 지난해 최 전 회장에게 한샘이펙스 보유지분 20%를 넘기면서 최대주주 지위를 내려놨다.


한샘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경영 원칙을 1994년부터 현재까지 고수해 왔다. 조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94~2019년 최양하 대표이사에 이어 강승수 대표이사 회장이, 최근에는 안흥국 사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번에 매각 대상 주식은 최대주주인 조창걸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는 한샘 주식 전부다.


한샘 관계자는 "조 명예회장이 회사의 지분과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회사의 가치를 계승·발전시킬 전략적 비전을 갖춘 투자자에 매각했다"면서 "기업 경영권의 상속·승계 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물론 한 단계 진일보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드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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