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권일운 기자] "남양유업 사태를 오너 리스크 때문이라고 봐야할까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뒤이은 매각 소식을 들은 한 인수·합병(M&A) 업계 종사자의 말이다. 그는 남양유업 몰락의 인과관계를 오너 리스크라는 흔하디 흔한 프레임으로 정의하고 마는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너 리스크는 통상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으로 확대될 수 있는 오너의 문제를 일컫는다. 일탈 내지는 범죄로 인해 오너 개인의 신변이 위험해지거나 기업 이미지 훼손이 생기는 것은 오너 리스크의 가장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사를 앞두고 오너가 변심을 일삼아온 기업도 오너 리스크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남양유업 몰락의 시계열표에도 오너 리스크가 존재했는지 따져 보자. 남양유업의 기업가치 훼손은 크게 네 단계를 거쳐 이뤄졌다. 대리점 갑질과 경쟁사 비방 혐의가 불거진 데 이어 홍원식 회장 친인척이 연이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며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여기에 코로나19에 자사 특정 제품이 효과를 낸다는 주장을 펼치는 바람에 대중들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됐다.
연이어 터진 사건사고들을 홍 회장 개인이 주도했거나, 고의적으로 방조했다는 근거는 없다. 촌수도 까마득한 친인척의 일탈이 기업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진 상황이 억울할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홍 회장의 잘못은 남양유업에 제대로 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집안단속을 잘못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여기까지는 홍 회장과 남양유업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관점에 따라서는 한 쪽 편에 서서)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월 30일 이후로는 홍 회장에 대한 이런 중립적(보기에 따라서는 우호적) 스탠스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
홍 회장은 이날부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남양유업을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계약 이행 당일 돌연 '잠수'를 하고 말았다. 이유는 계약 당사자인 홍 회장 스스로가 함구하고 있다. 그저 여전히 자신의 소유의 남양유업을 앞세워 "주식매매계약 종결을 위한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명망있는 개인이나 법인이 주도하는 수천억원짜리 M&A 거래라고 잡음이 일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계약을 체결한 이후라도 무산될 수 있는 게 M&A다. 하지만 거래를 깨거나 조건을 바꾸더라도 '깜빡이'는 넣는게 예의다. 어떤 방식으로든 미리 자신들의 의도를 전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신용이 덕목인 기업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한앤컴퍼니는 자금도, PMI(인수 후 통합) 계획도 문제 없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쪽은 홍 회장이라고 보는 게 옳아 보인다. 확실해진 것은 홍 회장은 3100억원짜리 계약을 제때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7월 30일을 기점으로 남양유업은 오너 리스크가 존재하는 기업임이 확실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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