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진철 부국장] '날렵한', '민첩한'을 가리키는 '애자일(Agile)'은 소프트웨어(SW) 업계에 익숙한 단어다. 정보기술(IT) 개발자 간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빠른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 시작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확산한 애자일은 기업들이 팀, 부서 등의 경계를 허물어 업무 진행과 의사결정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 기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애자일 경영'이 재차 주목받고 있다. 지난 2년 가까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비대면 문화 확산은 생산과 소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기존 산업간 경계는 허물어지고 새로운 비즈니스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탄소중립 에너지 혁신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기업들은 변화에 대한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빅뱅이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트렌드와 기술이 너무나 급격히 바뀌고 있는 만큼 민첩성이 조직 전체에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세대교체 바람을 타고 재계에 오너가 3세 경영인들이 전면에 대거 등장하는 것은 애자일 경영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40대의 젊은 구광모 LG 회장은 올해초 조직 문화와 관련한 키워드로 '애자일'을 강조하면서 작고 민첩한 조직을 통해 경영 스피드를 끌어올리겠다는 경영전략을 제시했다. 

LS그룹의 전통인 '10년 주기 사촌경영'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 경영권을 승계할 예정인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은 평소 '애자일 경영'을 강조해왔다. "직원이 자유롭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창의적인 생각도 가능하다"는 구 회장의 경영 지론은 벌써부터 혁신적 조직변화에 대한 기대를 모은다.

사실 정보통신(IT) 기업에 적합한 애자일 경영을 숙련도를 중시하는 제조업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애자일 경영 특성상 사내에서 크고 작은 팀 이동 및 조직구성 변화가 자주 발생하면 구성원이 정확한 개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애자일 경영을 인력 감축이나 인건비 절감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부진한 사업에서 과감하게 철수하고 유망한 분야, 신제품 영역으로 재빨리 옮겨가는데 애자일 경영은 중요한 요소라는데 이견은 없다. 재계를 대표하는 LG, SK, 한화,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은 이차전지와 수소·재생 에너지 위주로 사업구조 재편을 속도감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 중에선 창업 3세들로의 경영승계 준비와 맞물린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조부인 창업 1세대들은 산업화시대 불굴의 도전정신과 열정, 리더십을 통해 굴지의 기업을 일궈냈다. 그 당시 일사불란한 상명하복 문화는 조직을 잘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디지털화, MZ세대 등장으로 변화를 실감하는 지금, 경영 리더십의 개념도 달라졌다. 직원들에게 개방형 협업과 팀워크, 신뢰를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총수 혼자만의 구호가 아닌 원활한 사내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애자일 경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