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내년 6월부터 퇴직연금 상품에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도입되지만 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전망이다. 안정적인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수요가 충분한데다 당초 법안과 다르게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이 디폴트 옵션에 포함되면서 자금 이동(머니무브) 현상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융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시행령을 비롯한 하위 규정 준비를 마치고 내년 6월께 본격적으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한 근로자가 4주 넘게 별도로 운용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사전에 지정한 방법에 따라 자동으로 운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전에 지정할 수 있는 상품은 ▲타깃데이트펀드(TDF) ▲장기가치상승 추구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인프라펀드(뉴딜펀드) ▲원리금 보장상품 등 5개로 규정됐다. 

은행이나 보험사는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퇴직연금 가입자가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로 대거 이동할 것을 우려해왔다.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운용하는 은행, 보험사와 달리 증권사, 자산운용사는 상대적으로 위험하지만 고수익 펀드 같은 상품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증시는 조정국면에 들어섰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로 증시활황이 이어지자 돈의 흐름이 안전자산에서 실적배당형 자산 등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미 증권사는 지난해 퇴직연금 시장 성장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권 DC형, IRP 퇴직연금 적립금이 각각 16%, 36% 증가했다. 개중 증권사 DC형 및 IRP 적립금은 지난해 33%, 올해 2분기 24% 늘어났다. 수익률은 9.7%로 4~5%대에 불과한 타금융권을 크게 웃돌았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지난해 증시 랠리에 따른 수혜를 더 봤다는 분석이다. 다만 실적배당형 수익률이 증시 등락에 따라 언제든 마이너스 전환될 수 있다. 증시 침체시기였던 2018년의 경우 DC형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은 1.72%로 큰 변동이 없었지만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5.52%로 원금을 까먹었다.

10년 장기 수익률을 보면 업계별 수익률 갭은 줄어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DC형 10년 장기 수익률을 12개 증권사는 3.09%, 17개 보험사(11개 생명보험사, 6개 손해보험사)는 2.91%로 평균 수익률이 0.18%가량 차이 났다. 생보사로 비교군을 좁히면 수익률 차이는 0.15%까지 줄어든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퇴직연금을 상장지수펀드(ETF)로 수익률을 실시간으로 확인해가며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등 은행·보험사보다 운용 상품군이 넓다"라며 "투자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머니무브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수익률이 강조되면서 포트폴리오 운용폭을 넓혀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당초 은행 및 보험사에 퇴직연금을 가입한 고객들은 안전성을 중시 여긴다"며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상품이 추가된 만큼 아직까지는 시장점유율(MS)에 큰 변동을 주지는 않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