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자기소개서의 계절인 3월이 돌아왔다. 스펙 쌓기에 열중하던 취업 준비생들이 공개채용 일정에 맞춰 자기소개서 준비로 분주하다. 지원동기, 입사 후 포부 등 준비해야 하는 항목도 다양하다. 이들 중 일부는 영상 자기소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스튜디오까지 빌린다. 이처럼 타인에게 나를 소개하는 과정은 어려운 일이다.

자기소개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흥미다. 아무리 훌륭한 성장배경과 목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읽고 싶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고쳐주는 학원도 인기를 얻고 있다. 심지어 실제로 없던 일을 과장되게 꾸며 쓰는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거짓으로 포장하더라도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자기소개서 작성으로 바쁠 때가 있다.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기업들은 금융위원회에 '투자설명서'를 제출한다. 투자설명서에는 사업구조, 재무현황 등 기업의 배경을 비롯해 미래 계획, 자금사용 등 상장 후 포부까지 담겨있어 자기소개서와 비슷하다. IPO가 기업 생애주기에서 거의 한 번뿐인 기회인 만큼, 기업들도 투자설명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문제는 투자설명서가 자소설이 되는 경우다.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현재 능력과 비교해 터무니없는 매출액을 제시하거나 비교기업을 선정한다. 이를 통해 기업가치를 부풀리는 것은 덤이다. 상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간절함은 이해하나 잘못된 기업가치로 많은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다.

이러한 행태를 기업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기업은 투자설명서를 제출하기 위해 특정 증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조율 과정을 거친다. 기업이 자신들의 정보를 제공하면 증권사가 투자설명서를 작성해주는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증권사들도 투자금 회수, 수수료 수익, 계약 체결 목적 등 여러 이유로 먼저 자소설을 써주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한다. 결국, 기업, 증권사 모두 자신의 욕심을 위해 자소설을 쓴 '공범'인 셈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소설이 된 투자설명서로 역풍을 맞는 경우가 있다. DB금융투자는 지난달 대표 주관을 맡은 바이오에프디엔씨 공모과정에서 발생한 기관투자자 미납입분 약 11만주(약 31억원)를 떠안았다. DB금융투자는 향후 바이오에프디엔씨 주가 흐름에 따라 주관 수수료(15억원)를 날릴 수도 있다. 미납입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무리한 기업가치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시선이 우세하다.

또, KB·미래에셋·골드만삭스 등 대형 증권사가 주관한 현대엔지니어링은 기업가치 고평가를 지적받으며 상장을 철회했다. 하나금융투자가 주관한 모아데이타도 비슷한 이유로 공모 흥행에 실패했다. 증권사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기업은 IPO 실패로 향후 사업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이들 모두 자소설을 쓴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럼에도 자소설을 자기소개서라고 여기는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취업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자소설은 꺼내볼 일이 없으며 기업의 투자설명서도 상장을 위한 형식적인 서류일 뿐 상장 유지 수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도 평범한 투자설명서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소설에 속았던 투자자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투자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우량 기업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기업이 투자설명서에서 제시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이제는 증권사와 기업이 응답할 차례다. 부디 소설 대신 진짜 '가치'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