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춘추전국시대 당시 진나라는 학자 상앙(商鞅) 등용, 국가 전반에 걸쳐 법과 제도의 개혁 등을 단행했다. 내부 정비를 마친 진나라는 단숨에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진시황은 수백 년간 나누어져 있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는 업적을 이뤘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였다. 진시황은 만리장성·진시황릉 등을 건설하기 위해 백성들을 핍박했다. 또, 조정에는 조고(趙高)·이사(李斯) 등 간신들이 득세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진나라는 급속히 부패하고 결국 통일 15년 만에 멸망했다. 만약 간신 대신 진시황의 폭정을 제지할 수 있는 충신이 있었다면 중국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춘추전국시대는 증권업계에서도 재연되는 모습이다. 지난 2년간 각 증권사는 주식시장 호황에 힘입어 무서울 정도로 세를 불렸다. 지금도 업계 1위를 향해 가상자산, 자기자본 투자(PI) 등 새 먹거리를 발굴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은 1위에만 목메는 것이 아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품격'도 함께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품격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중효 前교보생명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말 기준 교보증권 지분 73.06%(4723만8769주)를 가진 최대 주주다. 또, 이 사외이사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모회사 대표를 지낸 인물이 자회사 이사회를 합리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이투자증권이 선임한 송형근 사외이사도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11년 NICE평가정보 사외이사로 선임돼 한국전자금융을 거쳐 지난 3월 하이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대구 소재 언론사 매일신문 상무이사를 지내고 지역 광고사 매일애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사회 기능을 감시하는 업무 특성상 '누구나' 사외이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DGB금융그룹 본사가 위치한 대구 지역유지인 데다 사외이사 경력 11년 동안 반대표 한번 던지지 않은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마음에 걸린다.

물론 교보·하이투자증권 모두 내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엄격한 심사와 검증을 거쳐 사외이사를 선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고와 이사도 처음부터 간신은 아녔다. 조고는 당시 진나라의 법전을 모두 외울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으며 이사는 진시황에게 진나라의 통일을 위한 정책과 사상을 전한 인물이다. 순간의 유혹에 빠져 자신들이 잘 아는 시스템 허점을 파고들어 사리사욕을 취하고 간신이 된 것뿐이다.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미리 매수한 뒤 차익을 거두는 '선행매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진국 前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도 지난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최근 있었던 공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금융그룹 사외이사이자 대표이사를 지낸 자가 이 같은 의혹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회사 차원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 된다. 지역유지와 모회사 회장 최측근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들을 발탁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두 증권사의 사외이사 선임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디 신임 사외이사들이 과거 허무하게 멸망했던 진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제 임무를 수행해주길 바랄 뿐이다.